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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철수씨, 올해는 꼭 제주도로 떠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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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철수씨, 올해는 꼭 제주도로 떠나요!”

입력
2019.06.13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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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으로 가고 싶어요. 미국은 TV에서만 봤거든요.”

얼마 전 재활원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여름 휴가지 여론 조사를 했다. 지적장애 김은정(가명)씨는 가보고 싶은 곳 1순위로 미국을 꼽았다. 눈빛이 너무 간절해서 ‘어떻게든 데려가 줄게’ 하고 말할 뻔했다.

여론 조사 영향이었을까. 지적장애 김철수(가명)씨는 요즘 맛집 검색에 여념이 없다. 여름 캠프에 가서 시켜먹을 통닭, 피자 등 맛집이 어딨는지 꼼꼼하게 뒤지고 있다. 그런데 검색 지역이 제주도다. 수시로 우리에게 압력을 넣는다.

“올해는 꼭 제주도로 가야 해요. 내가 제주도 맛집을 검색해 뒀으니까요!”

재활원 이용자들의 휴가는 ‘거대한’ 소망이다. 밖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는 까닭이다.

휠체어를 타는 중증지체 장애인 이형석(가명)씨 23년을 살면서 제대로 된 물놀이를 한 번도 못 해 봤다고 했다. 선생님들이 자신들의 휴가를 반납하고 형석씨와 휴가를 떠났다. 수영장이 있는 펜션을 섭외해 형석씨만을 위한 물놀이 시간을 가졌다. 혼자서 식사도 하지 못하는 형석씨는 하루 종일 수영장에서 튜브를 타며 더위를 날렸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경험이었겠지만 형석씨는 “죽을 때까지 못 잊을 추억”이라고 했다.

중증지체장애인 이조용(가명)씨는 몇 해 전에 태어나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야심차게 스노쿨링을 계획했지만 안전요원의 제지로 몸을 물에 담그고 여유를 즐기는 것으로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물고기들이 옆에서 헤엄치는 그 평화로운 풍경이 너무 황홀했다”고 고백했다. 조용씨의 평온한 여행을 위해 직원들이 고생했다. 이동수단이었던 이층버스에 조용씨를 업어서 태웠다 내리기를 반복했다. 직원들은 파김치가 되었지만 조용씨는 지금도 “천국 밑에 태국”이라고 노래를 한다.

2014년에 160여명의 이용자들과 함께한 피서도 잊지 못할 기억이다. 직원 70여명이 함께한 대형 행사였다. 영덕 해변에서 조개 줍고, 해초 따고, 튜브 타고 물놀이를 즐겼다. 그러다 발달장애 김승희(가명) 아동이 뜻밖의 행동을 했다. 갑자기 옷을 하나하나 벗기 시작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몰라서 묻느냐는 표정으로 이렇게 대답했다.

“바닷물이 튀어서요.”

워터파크는 성수기 출입이 불가능하다.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끼치고 위험하다는 이유로 예약을 거부한다. 8월 중순을 넘겨서야 워터파크 입장이 가능해진다. 그래도 좋다. 피서 적기든 아니든 물놀이가 소원 중의 소원인 장애인들에겐 물에 몸을 담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누군가는 말한다. “장애인들 데리고 무슨 생쇼냐”고. 장애인들을 곁에서 지켜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장애인들은 여행을 다녀오면 말부터 달라진다. 표현력이 업그레이드된다는 뜻이다. 여행 한번으로 언어가 달라질 만큼 바깥세상을 체험할 기회가 많지 않은 것이다. 여행은 누구에게나 의미가 있지만 그들에게는 의미의 높이와 깊이가 보통 사람들과 비교할 수 없다.

오늘 철수씨가 또 카톡을 보내왔다. 새로 발견한 제주도 맛집 게시물이었다. 메시지를 확인하다가 군침이 돌았다. 올해는 나를 위해서라도 제주도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 계획 하나 만으로 두 계절이 행복한 철수씨만큼 간절하진 않겠지만 제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설렌다. 대한민국의 어느 음식 전문가보다 부지런한 ‘맛객’ 철수씨 덕분이다.

임소영 성보재활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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