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발행 당시 실무자의 금전수수가 있었다는 혐의에 회사도 무척 당혹스럽습니다.”
‘중국 깡통어음’ 부도 사건에서 판매 증권사 직원들이 뒷돈을 받았다는 본보의 보도(10일자 22면)가 나간 뒤, 한화투자증권이 내놓은 입장은 듣는 이를 당혹스럽게 한다.
한화투자증권은 “추후 경찰 조사 결과를 알게 되면 다시 말씀 드리겠다”고 덧붙였다. 이 입장만 보면 한화투자증권은 ‘직원의 금품수수를 사전에 알지 못했고, 지금도 내막은 모른다’고 실토하는 듯하다. 오히려 ‘우리도 놀랐다’는 반응을 앞세워 자신도 피해자임을 강조하는 모습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몰랐고, 놀랐다고 하면 끝인가. 이 사건의 피해는 어음을 사들인 증권사뿐 아니라, 개인 투자자에까지 번진 상태다. 실제 부산은행을 통해 88억원 어치 어음을 산 개인 투자자들은 금융감독원 분쟁조정 외에 소송까지 불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어음을 판매한 유명 증권사 입장에선 직원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데 대해 우선 사과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또 왜 비리 정황을 포착하지 못했는지 판매 과정을 다시 점검해 보겠다고 하는 게 순서가 아닐까.
그런데도 한화투자증권은 오히려 대부분의 책임을 신용평가회사에 떠넘기고 있다. “독립적인 신용평가사에서 투자적격 등급이 부여된 것으로 보더라도 어음 발행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 “신용평가등급이 있고, 인수 즉시 전액 전문투자자에게 매출이 확정되어 있는 건은 별도의 리스크 (점검) 절차를 거치지 않게 되어 있다”고 한화투자증권은 주장한다. 신용평가사가 괜찮다고 평가한 만큼, 그 어음을 판 자신에겐 문제가 없다는 논리인 셈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업계의 반응은 사뭇 다르다. 신용평가사는 신용등급을 내어주는 것이 밥벌이고, 이를 의뢰하는 기업들은 소위 ‘갑’이다. 기업들이 원하는 신용등급을 받지 못하면 다른 신평사를 찾는, 이른바 ‘신용등급 쇼핑’을 할 정도다.
한 대형 증권사 관계자는 “이런 구조에서 투자적격 등급을 받은 어음이 부도 났다면, 그 등급을 내어준 신용평가사의 능력과 시스템에 의심부터 가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전히 ‘신용평가사의 등급은 절대적이고 틀릴 수 없다’는 전제를 내세우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한화투자증권의 모습은 업계 동료들마저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곧 경찰의 수사 결과가 나오고, 금융당국도 검사에 착수할 것으로 보인다. 사건의 내막이 드러났을 때, 한화투자증권은 또 당혹스럽다고만 할 것인가. 설사 의도한 실수가 아니었다 해도, 고객 앞에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는 기업. 한화투자증권에겐 지나친 기대일까.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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