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강서도 최준 결승골 어시스트… 우승컵ㆍ골든슈 동시 석권에 성큼
“축구밖에 없어요.”
앳된 얼굴의 여섯 살 이강인(18ㆍ발렌시아)은 유상철 K리그 인천 감독과의 첫 만남에서 특기를 묻는 질문에 부끄러운 듯 이렇게 답했다. 잘하는 게 축구밖에 없다던 소년은 이제 한국 축구의 역사를 바꾸는 데 단 한 발자국만을 남겨뒀다. 아버지가 보여 주던 디에고 마라도나(59ㆍ아르헨티나)의 영상을 따라 하던 소년이 그 전설이 걸었던 길을 그대로 따라 걷고 있다.
한국 20세 이하(U-20) 대표팀은 16일(한국시간) 오전 1시 폴란드 우치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19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 결승전에서 우크라이나와 운명의 한 판을 벌인다. 한국 남자 축구 사상 FIFA 주관 대회 첫 우승 도전이다. 한국 선수단, 이를 넘어 이번 대회에서 가장 주목을 받은 스타는 단연 이강인이다. 이강인은 대표팀에서 가장 어린 열여덟 살 막내지만 중원에서 팀의 공격을 조율하며 1골 4도움으로 유력한 골든슈(최우수선수상) 후보로도 떠올랐다. 네덜란드의 명문 아약스가 이강인을 원한다는 스페인 현지 보도도 나오고 있다.
팬들은 이강인의 플레이가 이전 한국 선수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아무리 많은 수비수에게 에워싸여도 공을 뺏기지 않는 볼 키핑 능력부터 선수들을 보는 시야까지 탁월하다.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기본기부터 마르세유 턴, 볼 키핑 능력은 역대급”이라며 “이강인은 다른 레벨”이라고 평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강인이 ‘떡잎부터 달랐던 선수’라고 입 모아 말한다. 유상철 감독은 이강인을 ‘스펀지’에 비유하면서 “하나를 가르치면 두 개를 깨우칠 정도의 흡수력을 지닌 선수”라며 “초등학교 입학 전 아이들에겐 한 가지를 여러 번 가르쳐도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데, 강인이는 영리한 성인 선수를 축소해 놓은 것 같아 깜짝 놀랐다”고 치켜세웠다.
축구의 본고장 스페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스페인 스포츠 전문매체 수페르데포르테에 따르면 갓 열 살이 된 이강인은 2011년 발렌시아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영어나 스페인어를 못해 의사소통 실수로 한 살 더 많은 형들과 경기를 뛰었지만 단 몇 번의 볼 터치로 구단 유소년 담당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단번에 입단 제의를 받은 이강인의 가족은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유럽축구연맹(UEFA) 미성년 선수 영입 규정상 선수뿐만 아니라 가족들이 모두 스페인에서 함께 살아야 했던 것이다. 결국 아버지와 어머니, 두 누나는 오직 이강인을 위해서 자신들의 인생을 바꿨다. 아들 하나만 보고 연고도 없는 지구 반대편으로의 모험을 택했다.
가족들의 희생은 이강인에게 큰 전환점이었다. 끝없는 노력과 훈련이 뒤따랐다. 태권도 사범이었던 아버지 이운성씨 밑에서 밤마다 추가 훈련을 했다. 스페인에서는 넓은 시야와 패스를 가진 이강인에게 유소년 8인제 그라운드는 너무 좁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교육을 강조하는 가족 문화도 큰 밑거름이었다. 스페인 고등교육과정(ESO)을 단 한 번의 재수강 없이 이수했다. 하루도 빠짐없이 숙제를 해 오던 이강인이 어느 날은 숙제를 내지 않아 친구들이 모두 놀랐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아들이 빽빽히 쓴 공책들을 가져다줬다는 일화도 있다.
빛의 속도로 성장하며 유소년 무대를 평정한 이강인은 결국 2018년 10월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1군 무대에 데뷔했고 U-20 월드컵에서 재능의 꽃을 피웠다. 준결승 에콰도르전에서 최준(20ㆍ연세대)의 결승골을 있게 한 날카로운 패스도 이강인에겐 특별하지 않은 것일지도 모른다. 이제 이강인에겐 마라도나와 리오넬 메시(32ㆍ아르헨티나) 등 세계적인 선수들만 걸었던 U-20 월드컵 우승과 골든슈 수상을 동시에 노리는 일만이 남았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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