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하나 이대서울병원 비뇨의학과 교수
필자의 진료 전문분야는 방광·요도 질환과 여성 성 기능 관련 질환이다. 쉽게 말해 소변을 보고 참는 것과 관련된 문제, 요도에 관련된 문제, 그리고 성 기능에 관련된 모든 문제가 해당된다.
전문 분야가 이렇다 보니 부부간이나 남녀간 내밀한 성생활을 묻고 따져야 하는 일이 드물지 않다. 특히 성생활 문제로 병원을 찾았을 때는 거의 그렇다. 자신의 은밀한 일을 의사에게 모두 털어놓으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다. 그래서 필자의 어깨는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특히 부부생활 문제로 찾아오는 신혼부부에게는 그 책임감은 더하다.
30대 중반인 A씨 부부는 결혼 1년 반 정도된 신혼부부다. 이들이 필자를 찾은 이유는 결혼 1년이 넘었지만 잠자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기 있기 때문이다. 근심 어린 표정으로 진료실을 찾은 이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결혼한지 1년 반이 넘었는데, 신혼 후 제대로 잠자리를 한 적이 없습니다. 아내가 첫 경험이라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후에도 계속 너무 아프다고 해서 전혀…”
“저도 그러고 싶지 않은데, 남편도 제가 아플까 걱정돼 굉장히 조심하고 신경을 쓰지만 몇 번을 시도해도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고 참을 수 없이 아파요. 다른 병원에서 질 확장 치료를 하면 도움될 거라고 해서 해봤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너무 아파 공포스러워 중단했어요. 이런 일이 반복되다 보니 이젠 그냥 살면 안될까 하는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남편이 외아들이라 부모님들이 손주를 기다리기도 하고, 저희도 2세를 가졌으면 하는데…”
부부는 혼전 순결을 지키고 결혼했다. 신혼 첫 날 신부가 너무 아파 일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 이후 관계를 가지려고 계속 노력했지만 극심한 통증과 부인의 두려움으로 지금까지 그냥 살고 있다. 부인 나이도 있고, 2세 계획도 세워야 하는 등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절박한 마음으로 병원을 찾았다.
여성의 성기능장애는 성욕이 없는 성욕장애, 성적 자극에도 몸이 반응하지 않는 성흥분장애(남성의 경우 발기부전), 다른 문제는 없는데 오르가슴을 느끼지 못하는 극치감장애, 생식기 통증을 느끼는 통증장애 등 네 가지로 나뉜다. 이 부부는 통증장애에 해당된다. 통증장애는 흔히 말하는 성교통도 있지만, 부부관계 도중이 아니어도 외음부에 통증을 느낄 때도 해당된다.
통증장애는 당사자에게는 정말 괴로운 일이다. 으레 관계 시 통증이 느끼는 걸로(어떤 남자들은 이를 자신의 생식기가 커서 그런 줄 알고 근거 없는 자신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알고 참고 넘긴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통증은 지속되면 안 되는 것이다.
성관계 시 통증을 느끼는 것은 통증 부위가 어느 곳인가에 따라 진단과 치료방향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삽입 시 음순이나 외음부의 바깥쪽이 아프면 외음부질전정염이나 신경염일 수 있어 이 부분을 집중 검사한다. 겉보다 질 안쪽이나 아랫배에 통증을 느낀다면 자궁경부, 자궁, 방광 쪽 문제일 수 있어 광범위하게 알아봐야 한다. 특히 성관계 도중이나 후에 출혈이 있다면 반드시 병원을 찾아야 한다. 출혈은 가벼운 자궁경부염이거나 단순히 마찰에 의해서 생기지만 초기 자궁경부암일 때도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여성의 성 반응 문제는 단순히 몸 어딘가 고장이 나 생기기도 하지만, 심리적인 문제로 나타날 때도 상당히 많다. 한 가지만 고친다고 드라마틱하게 나아지지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남성의 발기부전이 비아그라 등으로 쉽게 고칠 수 있는 것과 상당히 다르다.
때문에 여성은 해당 부위를 진찰하고, 호르몬·혈액검사를 하고, 신경 반사가 정상적으로 이뤄지는지, 혈액이 정상적으로 순환하는지 등 다양한 검사와 함께 자세한 성생활 검사, 부부 갈등이나 과거 트라우마나 잠재적으로 심리적인 영향을 미칠 문제 등이 없는지 상담해야 한다.
다행히 심리적인 문제가 없고 통증 원인이 외음부 점막 조직에 있는 분비샘의 만성 염증이거나 신경염이라면 소염제와 신경통 치료제로 꾸준히 치료하면 좋아진다. 수 개월 이상 약을 써도 호전되지 않거나 심한 외음부전정염이라면 병변 부위를 들어내는 절제술을 시행할 수 있다.
A씨의 경우 외음부의 질 입구부 점막에 신경염이 있었는데, 1년 이상 통증이 동반되는 성생활이 반복되면서 두려움과 압박감으로 우울증도 생겼다. 신경염 치료제를 먹으면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꾸준히 우울증 치료를 병행했다.
얼마 전 정기 검진 때였다. “선생님, 지난 주에 검사했는데, 저 임신했어요. 약을 끊은 지 두 달 정도 됐으니 괜찮겠죠?” “괜찮다마다요”. 이렇게 말하면서 어깨의 짐이 한결 가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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