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에콰도르의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결승 진출을 확정한 12일(한국시간) 폴란드 루블린의 아레나 루블린은 ‘작은 한국’이었다. 폴란드 현지 교민과 유학생은 물론, 유럽 곳곳에서 한국을 응원하던 이들이 속속 이 곳으로 모여 전ㆍ후반 내내 열띤 응원을 펼쳤다.
아레나 루블린엔 경기를 2시간여 앞둔 시간부터 태극기를 두르거나 국가대표는 물론 K리그 유니폼을 입은 관중들까지 속속 눈에 띄었다. 가깝게는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부터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심지어 영국에서 넘어온 교민들도 있었다. 이날 K리그 대구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을 찾은 박영제(24)씨는 “한국을 응원하기 위해 바르샤바에서 3시간 넘게 기차를 타고 이곳(루블린)에 왔다”고 했다. 박씨에 따르면 이날 폴란드 곳곳에서 학업에 열중하던 유학생들은 이날 대거 루블린으로 몰렸단다. 그는 “조별리그 때부터 한국 경기를 응원했는데, 한국의 승리가 거듭될수록 유학생들의 응원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며 “바르샤바에선 4강전 티켓을 구하지 못하거나 이동이 어려운 한국 학생들이 곳곳에 모여 단체응원을 하는 걸로 안다”고 했다.
티켓 재판매 사이트에서 웃돈을 주고 경기장에 온 교민들도 있었다. 바르샤바에서 산다는 사업가 오중열(59)씨는 “지인들과 축구경기를 보기 위해 한 장에 한국 돈 7만원 남짓의 돈을 내고 4장을 구매했다”고 했다. FIFA 공식홈페이지에선 가장 비싼 4강전 티켓이 한 장에 30즈워티(약 9,400원)에 판매되는 걸 감안하면 오씨가 구매한 티켓은 약 7배의 값에 거래된 것이다. 그럼에도 오씨는 “티켓 값이 아깝지 않다”고 했다. 그는 “1995년 처음 폴란드에 왔는데 한국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볼 일이 없었기에 교민들 사이에선 이번 U-20월드컵이 선물 같은 대회로 여겨진다”며 “결승에 진출한 한국이 꼭 우승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 차량으로 10시간 이상 이동해 루블린을 찾은 교민들도 승리의 기쁨으로 피로를 씻었다. 독일 바이마르의 한 오페라극장에서 성악가로 활동하는 김종근(39)씨는 “지난 세네갈과 8강전 승리가 확정된 뒤 뭔가에 홀린 듯 가족들과 ‘4강전은 직접 보러 가자’고 말한 게 현실이 됐고,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며 웃었다. 2002년부터 독일에 살았다는 그는 “단 한 경기를 보기 위해 10시간 이상을 달려 이 곳에 왔다”며 “오는 중간중간 라면을 끓여먹기도 하며 여행하듯 왔기에 고단함보단 즐거움이 크다”고 했다. 오스트리아에서 ‘암표라도 사겠다’는 마음으로 달려왔다는 두 명의 한국인은 결국 경기장에서 표를 구하지 못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처럼 다양한 기대와 사연을 품고 경기장에 모인 한국인들은 경기 내내 ‘오 필승 코리아’ ‘아리랑’등 응원가를 합창하며 한국을 응원했다. 에콰도르 응원단의 조직적 응원에도 결코 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선수들이 떠나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고, 선수들도 수백 명의 한국인 관중들을 위해 끝까지 남아 인사했다. 사상 첫 남자축구 FIFA 주관대회 결승 진출이란 역사가 쓰인 현장을 지킨 이들은 조심스레 한국의 우승을 전망했다. 오중열씨는 “오는 16일 결승이 열리는 우치는 섬유산업단지가 있어 한국 교민들 사이에선 ‘폴란드의 대구’로 불린다”며 “상대적으로 바르샤바와도 가까워 한국 교민들이 훨씬 더 많이 찾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루블린(폴란드)=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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