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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이정은 “봉 감독이 지하실 여는 장면 콘티를 먼저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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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충’ 이정은 “봉 감독이 지하실 여는 장면 콘티를 먼저 줬다”

입력
2019.06.11 19:00
수정
2019.06.11 19:22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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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의 이정은은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상영 당시를 회상하며 “유럽인들은 기택 식구에 감정이입이 됐는지, 극중 문광이 위기에 처하는 장면에서 다들 박장대소를 하더라”고 웃었다 CJ ENM 제공
영화 '기생충'의 이정은은 제72회 칸국제영화제 공식 상영 당시를 회상하며 “유럽인들은 기택 식구에 감정이입이 됐는지, 극중 문광이 위기에 처하는 장면에서 다들 박장대소를 하더라”고 웃었다 CJ ENM 제공

※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영화 ‘기생충’ 개봉 전 기자들에게 글을 띄웠다. “공개된 예고편 이후의 스토리 전개는 최대한 감춰 주셨으면 한다.” 존재만으로도 스포일러인 두 배우, 이정은과 박명훈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 있다. ‘기생충’에 가난한 기택(송강호)네 가족과 부유한 박 사장(이선균)네 가족 말고 또 다른 가족이 나온다고, 컴컴한 지하로 쫓겨난 애달픈 삶이 있다고, 기생 아래 또 다른 기생이 있다고 말이다. ‘기생충’이 700만 관객을 돌파하고 나서야 ‘묵언수행’에서 풀려난 이정은을 11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그 장면이 무서울 것이라 생각진 못했어요.”

영화 ‘기생충’에서 국문광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박 사장네 가사도우미인 그는 기택 가족에게 쫓겨난 이후 영화 흐름을 뒤집는다. 기생에 성공한 기택 가족이 박 사장네 집에서 천둥 번개가 치는 한밤에 파티를 열 때, 문광은 초인종을 눌러 모습을 비춘다. 빈자와 빈자의 싸움, 나아가 빈부 간 갈등이 또렷해지는 시작점이다. 기괴한 모습의 문광을 연기한 이정은(49)은 정작 촬영 당시 걱정이 많았다. “저는 스스로 귀여운 얼굴이라고 생각하기에, 찍고 나서 무서우냐고 계속 물어봤어요. 최대한 예의 바르고 친절하게 연기한 것이 큰 공포를 준 것 같아요.”

이정은은 봉준호 감독의 숨겨진 페르소나로 불린다. ‘기생충’을 비롯해 ‘옥자’(2017), ‘마더’(2009)에 출연했다. 그는 반전에 가까운 뛰어난 연기력으로 봉 감독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입증했다. ‘옥자’에서는 슈퍼 돼지 옥자의 소리 연기를 하기도 했다.

봉 감독은 ‘기생충’ 기획 초기부터 이정은을 염두에 뒀다. 재미있고 이상한 작품을 같이 해 보자는 제안과 함께였다. 당시 봉 감독이 보낸 콘티 중 하나가 문광이 지하실로 가는 비밀통로를 몸을 공중에 띄운 기묘한 자세로 여는 장면이었다. 이정은은 “봉 감독이 ’옥자’ 상영회 당시 내년 스케줄을 비웠으면 좋겠다고 말했다”며 “지하실을 여는 장면을 그린 콘티를 처음 받았을 때, 기계체조를 연습해야 하는 것이냐 묻기도 했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와이어를 달고 그 장면을 찍었다. 봉 감독이 안전을 계속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이정은은 주연 욕심을 가지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어머니의 말에 있었다. “어머니가 하도 ‘네가 이렇게 생겨서 뭘 하겠니, 주연은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에 인물도 좋은데’라고 코를 죽였어요(웃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정은은 주연 욕심을 가지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어머니의 말에 있었다. “어머니가 하도 ‘네가 이렇게 생겨서 뭘 하겠니, 주연은 옥구슬 굴러가는 소리에 인물도 좋은데’라고 코를 죽였어요(웃음).” 한국일보 자료사진

북한 리춘히 아나운서 연기도 발군이었다. 리춘희 성대모사는 기택 가족에 의해 억울하게 쫓겨난 신세를 역전하고 빈자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승전보였다. 동시에 지하실에서 4년간 갇혀 지낸 남편과 그를 돌본 문광의 처지를 블랙코미디처럼 나타낸 것이기도 했다. 그곳은 과거 북한 침공이나 채권자 습격을 막기 위해 만든 비밀공간이었으나, 이후 남편의 은거지로 바뀌었다. 이정은은 “문광 부부가 지하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을 텐데, 그곳에서 어떤 놀이를 할까 생각했다”며 “땅굴 같은 곳에서 사는 자신들의 처지에 대해 유희를 했다면 북한 개그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은 부지런한 배우로 유명하다. ‘옥자’에서 옥자 목소리를 연기할 때는 돼지 농장을 다니며 울음소리를 연구했다. 서울 왕십리 토박이지만 사투리도 발군이다. 영화 ‘택시운전사’(2017)에 출연할 때는 직접 광주에 내려가 휴대폰에 억양을 녹음할 정도로 언어에 대한 욕심도 많다. 정작 이정은은 노력에 비해 겸손하다. 그는 “아무리 사투리를 연습해도 지방 토박이가 듣기엔 분명 티가 나기에 안타까운 마음에 이부자리에서 많이 운다”며 “옥자를 연기할 땐 봉 감독의 지시에 맞춰 소리의 질감보다는 짐승이 사람처럼 느끼는 감정을 고민했다”고 밝혔다.

‘주연 이정은’을 바라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2013년 ‘전국노래자랑’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이후 지금껏 그는 조연과 단역을 오갔다. ‘기생충’으로 국내외에서 다시 한번 연기력을 인정받았지만, 이정은은 배역 욕심이 없다고 말한다. “무리하게 할 욕심은 없어요. 연기 인생 나머지 시간을 가볍고 신나게 즐기고 싶습니다. 다만,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낯선 언어를 사용하는 배역의 합작 영화나 드라마를 찍고 싶어요.”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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