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 세제 개편안 ‘현행 유지’… 여야 의원들 상향 개정안 발의
국회 논의 과정서 수정 여지… 전문가 “선진국 적용대상 좁게 설정”
당정이 중소기업을 가족에 물려줄 때 상속세를 최대 250억원 깎아주는 ‘가업상속공제’의 매출액 기준을 현행 3,000억원으로 유지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당은 물론, 야당과 재계까지 “매출 기준을 높여 대상 기업을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향후 국회 논의 과정에 논란이 예상된다.
11일 당정이 발표한 ‘가업상속지원세제 개편방안’에 따르면, 정부는 가업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는 중소ㆍ중견기업 조건을 현행 ‘매출 3,000억원 미만’으로 유지했다. 가업상속공제는 매출 3,000억원 미만, 가업(家業) 10년 이상 중소ㆍ중견기업을 가족에 물려줄 때 상속재산 가액에서 최대 500억원을 공제해 세부담을 최대 250억원 줄여주는 제도다. 그 동안 더불어민주당의 ‘가업상속 및 자본시장 과세 개선 태스크포스(TF)’는 매출 기준을 5,000억~7,000억원으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왔는데, 결국 ‘현행 유지’라는 정부 입장이 관철된 셈이다.
하지만 이번 당정 개편안이 그대로 확정될 지는 불투명하다. 당장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이날 “매출규모 등의 조정이 필요하다. ‘언 발에 오줌 누기’식 개정으로 경제가 좋아질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당은 매출 기준을 ‘1조원 미만’까지 대폭 높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여당에서조차 이원욱 의원(1조원), 윤후덕 의원(5,000억원) 등 매출 기준을 상향하는 개정안이 발의돼 있다. 여권 관계자도 “공제한도(500억원)는 유지하기로 당정간 합의가 있었지만, 매출 기준은 그렇지 않다. 입법 과정에 수정 여지가 있는 셈”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대체로 매출기준 확대에 부정적인 의견을 보인다. 가업상속공제의 근본 취지는 중소기업이 ‘상속세 재원부족→기업지분 매각→일자리 감소’ 상황에 놓이지 않기 위해 세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다만 이런 조치는 조세 형평성을 해치기 때문에 선진국들은 적용 대상을 가급적 좁게 설정한다.
독일에선 기업 자산이 2,600만유로(약 340억원)만 넘어도 상속세가 경영에 부담된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자산 9,000만유로(약 1,100억원) 초과 기업은 아예 공제를 받을 수 없다. 일본은 아예 비상장 중소기업에 한해 감면이 아닌, 납부 연기(과세이연) 혜택만 준다. 반면 한국은 중소기업의 100%, 중견기업의 86.5%가 공제 대상일 만큼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것이다.
또 매출 기준을 높이면 ‘특혜’가 될 가능성도 있다. 매출 3,000억~5,000억원 사이 중견기업은 현재 282곳에 불과하다. 민주당 TF 관계자는 “이중 공제 요건인 △피상속인 지분 50% 이상 △10년 이상 보유ㆍ경영 등에 해당되는 기업은 극소수인데, 이들을 위해 기준까지 바꾸는 건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강성훈 한양대 교수는 “한국의 상속공제 제도는 다른 나라보다 적용범위나 혜택은 큰 반면, 사후관리 조건이 너무 엄격해 실효성이 떨어졌는데, 이번 개편으로 사후관리 조건은 대폭 완화됐다”며 “일단 개편안을 시행하면서 추가적인 대책을 검토하는 수순이 맞다”고 제안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