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빨리 늙고 있는 나라로서 고령 운전자가 가장 많은 일본이 10여년 후 한국이 참고해야 할 총체적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고령자의 안전 운전을 보장하는 한편, 필연적으로 확률이 높아질 수밖에 없는 고령자 운전에 따른 사고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들이다. 대표적으로 △안전기능 탑재 차량 개발 △고령자 전용 운전면허 등인데, 도쿄도(東京都)에선 고령 운전자가 차에 안전장치를 보강할 경우 비용을 보조하는 방침도 채택했다. 면허 자진반납이나 75세 이상 운전자에게 인지기능 검사를 의무화하는 기존의 소극적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인식에서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11일 일본 정부가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자동 브레이크 등 안전기능이 탑재된 차량에 한해서만 운전할 수 있는 면허를 새로 만드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는 이달 말 각의(국무회의)에서 결정하는 정부의 성장전략에 이 같은 방안을 포함하고 경시청, 경제산업성, 국토교통성 등 관계부처와의 협의를 거쳐 올해 세부 규정을 결정할 방침이다. 또 이르면 2020년부터 조기 도입을 목표로 추진키로 했다.
이는 자동차 업계가 이미 위험 상황에서 자동으로 브레이크를 걸거나 브레이크 대신 가속기를 잘못 밟는 실수를 방지하는 장치를 개발하는 등 자율주행차 개발에 나선 흐름과 무관치 않다. 운전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안전장치가 강화된 차량에 대해서만 고령자 운전을 허용하겠다는 얘기다.
일본 정부는 또 안전장치를 탑재한 차량을 대상으로 보험료와 세금을 감면해 주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자동차 업계엔 안전기능을 갖춘 신차 개발을 독려하는 동시에 고령 운전자에게는 안전기능 탑재차량으로 교체할 것을 촉진하겠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번에 검토되고 있는 고령자 전용 운전면허는 의무사항이 아닌 선택사항이다. 일단 안전성능이 뛰어난 차량을 운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면허로 도입한 다음, 장기적으로 안전기능이 탑재된 차량을 이용하도록 유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소득 없이 연금 생활자가 많은 고령자들이 안전장치를 갖춘 신형 차량으로 교체하기엔 경제적 부담이 큰 현실을 감안해서다.
한편 일본에서 가장 큰 지방정부인 도쿄도는 고령 운전자들을 대상으로 안전장치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을 90%까지 보조하기로 결정했다고 NHK가 보도했다. 도쿄도는 지원 대상 연령, 지원 절차, 시행 시기 등을 구체화한 뒤 실시할 계획이다. 우선 1년간 한시적으로 시행되며, 지원 대상이 되는 고령 운전자들은 3,000엔(약 3만2,800원)~9,000엔(약 9만8,400원)정도의 자기 부담만으로 차량에 안전장치를 설치할 수 있다.
초고령사회인 일본은 1998년부터 고령자들을 대상으로 면허 자진반납을 유도하고 있다. 면허 반납 시엔 대중교통 할인이나 정기예금 추가금리 적용 등의 지원을 해주고 있다.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가운데 약 40만명이 면허를 자진 반납했다. 아울러 2009년 6월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라 75세 이상 고령자가 면허를 갱신할 경우 인지기능 검사를 의무화하고 있다.
최근 고령 운전자에 의한 사망사고가 잇따르면서 더 강력한 대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져 왔다. 그러나 대중교통과 생활편의시설이 부족한 시골에선 고령자들이 운전을 하지 않으면 당장 일상생활에 지장이 발생하기 때문에 면허 반납을 의무화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자율주행기능 등 안전기능을 갖춘 차량을 대상으로 한 고령자 면허를 만들고, 고령 운전자들에게 차량 교체를 위한 보조금과 세금 지원을 제공하는 방안을 병행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
도쿄=김회경 특파원 herm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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