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화제가 됐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홍준표 자유한국당 전 대표의 유튜브 합동 방송에서 가장 눈길이 갔던 대목은 과거 진보ㆍ보수 진영이 했던 ‘증오 정치’에 대한 화끈한 사과였다.
유 이사장이 먼저 “내가 상대를 공격할 때도, 상대 공격에 방어를 할 때도 과도하게 나갔다는 아쉬움이 평소에 있다”고 운을 뗐다. 그러자 홍 전 대표는 “근데 유 장관이 야당 할 때도 아주 못된 소리 많이 했어”라고 뼈있는 농담을 던진 다음, “나도 야당 할 때 못된 소리 많이 했고”라며 뜻밖에 맞장구를 쳤다. 홍 전 대표는 이어 “야당은 힘이 없으니 한방에 가슴에 찔리는 소리를 해줘야 해서 못된 소리를 한다”며 이해를 구했고, 유 이사장은 “야구 하다 보면 빈볼도 던지고 하는 것”이라며 공감을 표했다. 한때 독설가와 저격수로 이름을 날렸던 두 사람이 서로 존중하면서 대화하는 모습은 방송을 본 많은 시청자의 공감을 샀다.
여야의 정치 현실은 다르다. 패스트트랙 정국의 여파로 가시 돋친 막말들의 수위가 점입가경이다. “우리 사회가 악다구니, 쌍소리, 욕지거리로 날이 지고, 샌다”고 작가 김훈이 일갈했을 정도다.
5ㆍ18 진상규명 공청회에서 나온 자유한국당 의원 3인의 망언이 변곡점이었던 것 같다. 공공뉴스어카이브인 빅카인즈에서 5ㆍ18 망언이 보도된 2월 8일부터 지금까지 넉 달간 ‘막말’이 들어간 기사를 찾아봤더니 3,459건이나 검색됐다. 반면 2월 8일 이전의 넉 달간은 890건으로 4분의 1에 불과했다. “5ㆍ18 유공자 괴물집단이 세금을 축내고 있다”는 혐오 발언은 이성과 상식이라는 면역체계를 허물어뜨린 공론장의 바이러스였던 셈이다. 5ㆍ18 망언 두 달도 안 돼 “세월호 유가족이 동병상련을 징하게 해 처먹는다”는 망언이 나온 건 우연이 아니다.
도를 넘은 막말과 공격은 상대의 반발을 부르기 마련이다. 한국당 지도부가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좌파독재” “민생 지옥”이라고 외치니, 여당 대표는 “도둑놈”이라고 맞받는다. 이른바 상승작용 효과다. 대통령이 5ㆍ18 기념식에서 야당 대표 면전에 “독재자의 후예”라고 질타하고 영부인은 ‘악수 패싱’을 하는 대신, “5ㆍ18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한 건 보수당 정부 아니었냐”고 점잖게 꾸짖었다면 어땠을까. 그랬어도 대통령이 제안한 영수회담이 한 달째 표류하는 신세일까.
같은 진영 내에서도 막말은 전염성이 크다. 자극적인 메시지가 아니면 주목을 덜 받게 되기 때문에 정치인은 더 센 발언을 찾는다. 유튜브 등을 통해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 공론장을 형성하면서 생긴 편향성은 막말에 대한 경계의식을 허문다. 이제는 “문재인은 김정은 수석대변인” 정도론 부족하다. 최근에는 “김정은이 문재인보다 낫다”는 말까지 나왔다. 증오의 정치가 기승을 부릴수록 막말은 자극적이고 공격적인 언어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다.
막말과 증오의 정치는 소모적이다. 진지한 반대와 격렬한 토론은 없고 상대를 향한 감정적 배설만 남기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정치혐오의 확산이고 결국 모두가 피해자가 되는 구도다. 야당은 왜 달을 가리키는데 손가락만 쳐다보냐고 항변한다. 또 막말 프레임은 불공정하다고 주장하지만 대안 없이 반대만 하면서 자초한 측면이 크다. 여당이라고 좋은 상황은 아니다. 막말만 부각되면 공론장에서 국정 의제는 실종된다.
뒤늦게 ‘야당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거나 ‘아무리 빈볼이라도 머리를 향해 던지진 말자’고 말하는 홍준표ㆍ유시민의 표정에선 멋쩍음이 읽힌다. 막말과 증오 정치가 얼마나 덧없는지 새삼 일깨워준다. 20대 국회 정치권이 막말의 악순환 고리를 끊어내야 하는 이유다. 그러려면 야당은 왜 우리한테만 막말 프레임을 들이대냐는 주장을 하기 전에 5ㆍ18 망언 세력과 과감히 절연해야 한다. 여권도 야당과의 대화 복원보다 막말 프레임에 기댄 반사이익만 누리려고 했던 건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김영화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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