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인터뷰에는 영화 '기생충'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스스로 ‘귀염상’이라 말하는 배우가 또 있을까. 쉰 듯한 웃음소리가 사랑스럽고, 솔직해서 더 호감이 가는 이정은을 만났다. ‘기생충’ 속 문광은 온데간데 없이 참한 모습으로 등장했지만, “산만하기 이를 데가 없는 성격”이라는 고백으로 반전 매력을 뽐냈다.
11일 오전, 기자들과 만난 이정은은 "내가 88학번이다. 무대에서는 70대도 연기해봤다"며 "영상을 하니까 (역할의 나이가) 내려오더라. 앞으로 좀 더 내려오지 않을까. 역행되고 있어서 나로서는 괜찮은 진행이지 않나 싶다"면서 웃었다.
그는 특별히 하고 싶은 역할이나 장르가 있지는 않다면서, "장르를 구분하는 건 감독이나 제작사가 할 일이다. 나는 장르 구애 없이 나의 직감에 이 이야기가 좋으면 한다. (장르가) 큰 문제는 아닌 거 같다"고 전했다.
또한 이정은은 '기생충' 문광 역이 관객들에게 이렇게 뜨거운 반응을 얻을지는 몰랐다고 털어놨다.
"사실 제가 귀염상이잖아요.(웃음) '사람들이 보고 공포감을 느낄 수 있을까'가 초미의 관심사였죠. 그런데 반응이 괜찮아서 용기를 얻었어요. 지금도 스스로 생각할 때는 '난 너무 귀여운데 왜 무섭지' 싶죠."
실제로 문광의 인터폰 신은 촬영 당시 스태프들도 열광할 정도였다.
"영화가 들어가면 리딩을 하잖아요. '이런 식으로 좀 읽겠다' 하고 예시를 했을 때 감독님이 비교적 좋다고 하셨어요. 그런 톤으로 유지해보자고 하셨죠. 문광은 취중에 온 거에요. 얼굴에 상처가 있고, 비오는 날 찾아왔는데 취중이지만 어떻게 하면 예의가 바를지 고민하면서 한 거죠. 그게 무서울지는 몰랐어요. 오히려 약간 웃기지 않을까 했는데 사람들이 너무 섬뜩하다고 해서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르더라고요. 속을 모르는 상황이라 오히려 더 무서워하는 거 같아요."
봉준호 감독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문광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그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감독님과 작업할 때 그런 적 있어요. ‘마더’ 때 술자리에서 ‘나는 이모인가, 저쪽은 고모인가’ 그런 얘기를 했더니 ‘일수도 아닐 수도 있다’고 하셨어요. 항상 모호하게 답을 주시죠. 인물의 배경 같이 그런 부분은 정확하게 주지 않아요. (인터폰 신에서) 문광이 누구에게 맞았는지도 얘기해주지 않았아요. ‘맞았을 수도 있겠지’라고 하셨죠. 사채업자에게 맞았을 수도 있고 술 먹고 시비가 걸려서 맞았을 수도 있죠. 여러가지가 겹쳐서 일어났을 수도 있고요.”
“‘얼굴이 많이 부어있고 맞은 느낌’. 그것만 주더라고요. 봉 감독님 머리가 정말 좋은 거 같아요. 사채업자에 대한 얘기가 나오니까 사람들은 사채업자에게 맞았다고 생각을 하죠. 그런 걸 보는 쾌감을 주는 거 같아요.”
그는 또 "사실 배우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분위기가 바뀌어야 하는 시점에 나오는 거라서, '반전을 경험한 거 같다'는 관객의 글들을 보며 '(문광의 연기가) 성공한 거 같다'고 느꼈다"고 털어놨다.
이정은은 '기생충'에서 남편으로 등장한 박명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영화 속 남편이랑 이 정도 반응을 예상은 못했어요. (스포일러 때문에) 명훈 씨가 잘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에, 사실 배우에겐 힘든 시간이죠. 작품도 제한이 있고 해서 더 돈독하게 지냈어요. 서로 스코어 올라갈 때마다 뿌듯한 마음이 있었죠. 숫자에 연연하지는 않지만요."
한편, 이정은은 1991년 연극 '한여름밤의 꿈'으로 데뷔해 다양한 작품에서 활약했다. 지난해엔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함안댁을 연기해 큰 사랑을 받았고,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에서 문광 역을 맡아 환상적 연기를 보여줬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