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전 남편 살해사건의 피의자인 고유정이 지난달 28일 오후 3시28분 제주시내 모 대형마트에서 범행 당시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는 표백제와 락스, 테이프 등을 반품하는 모습이 폐쇄회로(CC)TV에 촬영됐다. 제주동부경찰서 제공.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의 피의자 고유정(36)은 재혼한 현 남편과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혼자서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전 남편을 잔혹하게 살해한 것으로 경찰 조사 드러났다. 평범했던 주부가 ‘완전범죄’를 노린 살인자가 된 배경에는 ‘인터넷’이라는 조력자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게 경찰 설명이다.

제주동부경찰서는 지난달 25일 오후 8시~9시16분 사이 제주시 소재 한 펜션에서 전 남편인 A씨(36)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후 시신을 훼손하고 유기한 혐의(살인 및 사체 손괴ㆍ유기ㆍ은닉)로 구속된 고씨를 오는 12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11일 밝혔다. 경찰은 증거물로 고씨가 충북 청주시 자신의 거주지 내 분리수거장에 버린 범행 흉기 등 89점을 확보했다.

경찰은 범행 현장인 펜션 내에 남아있는 혈흔 형태를 분석한 결과 고씨가 미리 준비한 수면제인 졸피뎀을 먹은 A씨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한 상태에서 고씨의 공격을 받아 살해당한 것으로 추측했다. 경찰은 또 고씨는 공격을 받고 쓰러진 A씨가 기어서 도망가는 과정에서도 흉기를 휘두르는 등 3회 이상 A씨를 흉기로 찌른 것으로 추정했다.

범행동기와 관련해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투입해 수사를 벌인 결과 고씨와 A씨 사이에 낳은 아들(6)의 친권문제를 둘러싼 다툼이 배경이 된 보고 있다. A씨는 2년 전 이혼한 후 고씨가 아들을 보여주지 않자 최근 가사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 9일 법원은 A씨의 손을 들어줬다. 범행 당일인 25일은 법원의 명령에 따라 A씨가 2년 만에 처음으로 아들을 만나는 날이었다. 이 때문에 고씨는 아들과 A씨가 지속해서 만남을 가질 경우 자신도 A씨와 연결될 수밖에 없고,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질 경우 재혼한 현재 남편과의 결혼생활이 깨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으로 분석됐다. 결국 A씨의 존재로 인해 갈등과 스트레스가 계속될 것이라는 극심한 불안감이 고씨가 범행을 결심한 계기가 됐을 것으로 경찰은 추정하고 있다.

실제 고씨는 재판이 끝난 다음날인 지난달 10일부터 휴대폰과 컴퓨터 등을 통해 이번 범행과 관련된 졸피뎀을 비롯해 살인도구, 혈흔 지우는 법, 뼈의 무게, 감자탕 뼈 쓰레기가 음식물쓰레기인지 아닌지 등을 인터넷을 통해 검색했다. 고씨는 또 범행 장소인 펜션도 인터넷 검색을 통해 예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고씨는 인터넷에서 검색한 내용대로 제주에 오기 전 지난달 17일 충북 청주시 주거지 인근 병원에서 졸피뎀 성분이 든 수면제를 처방받았다. 또 고씨는 사전에 범행 도구를 준비했고, 범행 후에는 펜션 내부를 청소해 일반인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혈흔 등을 깨끗이 지웠다.

경찰은 또 고씨가 시신을 제주 펜션과 경기 김포시에 위치한 부친 소유의 집에서 두 차례에 걸쳐 훼손한 것은 시신을 쉽게 훼손ㆍ유기할 수 있는 부분과 어려운 부분을 구분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추정했다. 경찰은 고씨가 1차로 제주에서 훼손한 크기가 작은 시신 일부를 완도행 여객선을 타고 오면서 유기했고, 나머지 시신은 자신의 차량으로 김포의 집으로 옮긴 후 훼손한 것으로 보고 있다. 고씨는 김포에서 시신을 훼손하기 앞서 혈흔 등이 남지 않도록 지난달 29일 인천시내에서 사다리, 방진복, 덧신 등을 구입했다. 또 인터넷을 통해 미리 구입한 목공용 도구 등을 사용해 시신을 훼손한 후 31일 새벽에 종량제봉투에 담아 분리수거장에 유기한 것으로 드러났다.

현재 고씨는 A씨를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한 부분에 대해서는 범행을 자백했지만, A씨가 성폭행을 하려고 덮치자 대항하는 과정에서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고씨는 또 정확한 범행동기와 범행수법 등에 대해서는 진술을 회피하거나 엉뚱한 답변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가장 확실한 범행증거인 숨진 A씨의 시신도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고씨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범행수법 등은 미스터리로 남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박기남 동부경찰서장은 “고씨는 재혼한 현재의 남편을 신뢰하고 완벽한 가정을 꿈꾸고 있었는데 전 남편이 방해요소로 끼어들자, 이 세상에 없어져야 할 존재로 판단한 것 같다”며 “다만 범행 수법이 잔인하다고 해서 고씨를 싸이코패스로 보기 어렵고, 조사과정에서도 정신질환 등에 대한 별다른 이상 징후는 없었다”고 말했다.

제주=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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