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희호 여사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반려자이자 정치적 동지로 숱한 고초를 함께 했다. 옥바라지와 망명, 연금생활을 견디면서 남편의 민주화 신념을 굳건히 지켜냈다. 이 여사는 1950년 대한여자청년단을 결성한 1세대 여성운동가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와 양성평등의 상징이었기에, 이 여사의 생전 발언은 오늘날 더욱 깊게 와 닿는다.
71년 김 전 대통령이 첫 대선에 도전할 때부터 이 여사의 신념은 결연했다. 김 전 대통령이 신민당 대선 후보로 나서자 찬조 연사를 통해 “만약 남편이 대통령이 돼 독재하면 제가 앞장서서 타도하겠다”고 외쳤다.
혹독한 정치의 길에서 다정한 아내의 면모도 드러냈다. 72년 이 여사는 해외에서 유신 반대 투쟁을 하던 김 전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부에서는 당신이 외국에서 성명 내는 것과 국제적 여론을 제일 두려워한다”며 “특히 미워하는 대상이 당신이므로 더 강한 투쟁을 하시라”고 용기를 북돋았다.
김 전 대통령이 77년 징역 5년을 확정 받고 진주교도소로 이감됐을 때도 이 여사는 수백 통의 편지를 보냈다. 이 여사는 “하루를 살더라도 바르게 산다는 것이 얼마나 값진 일이겠나”라고 적었다. 김 전 대통령이 80년 신군부가 조작한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사형 선고를 받았을 때 그는 "당신의 생이 평탄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더욱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이라고 응원했다.
이 여사는 여성운동에 있어서도 진취적인 선구자 역할을 했다. 54년 5월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박순천이 출마하자 길거리에서 “여성은 여성 대표를 찍읍시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그는 자서전 ‘동행’(2008)에서 김 전 대통령에 관해 “그에게 정치는 꿈을 이루는 길이며 존재 이유였다면, 나에게는 남녀평등의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길 중의 하나였다”고 말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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