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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 칼럼] 유일한 섬 지구

입력
2019.06.12 04:4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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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경남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4회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이 5일 오후 경남 창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24회 환경의 날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별은 1에 0이 스물세 개 붙은 수만큼 많다. 그런데 오직 태양만 생명을 잉태하였고 태양계에만 생명이 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것은 오만한 생각 아닌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제10대 국장을 지낸 에드워드 와일러의 말이다. 그의 말을 풀어 쓰면 “우주는 넓다. 그냥 넓은 게 아니라 굉장히 넓다. 따라서 어딘가에 생명이 있을 것이다. 또 어딘가에는 우리 같은 지적 생명체가 있을 것이다.”라는 말이 된다. 우주에 존재하는 지적생명체를 탐색하는 과학자들의 상투적인 이야기다.

1960년대 드레이크 박사는 인간과 교신할 수 있는 지적 외계 생명체의 수를 계산하는 방정식을 만들었다. 우리 은하에서 1년 동안 탄생하는 별의 수, 별에 행성이 있을 확률, 그 행성에 생명체가 살 수 있는 확률 등 일곱 가지 변수를 곱해서 지적 외계 생명체 거주 행성 수를 구한다. 각각의 변수에는 해답이 있는 게 아니다. 하지만 대략적인 변위 속에 놓인 값을 넣어서 답을 구할 수 있다.

아무리 보수적으로 변수를 넣어도 우주에는 우리 같은 지적 생명체가 수천 억 개의 행성에 존재한다는 답을 구하게 된다. 그런데 지구 외에 다른 행성에도 생명이 살 수 ‘있다’는 것은 실제로 그 행성에 생명이 살고 ‘있다’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야기가 아닐까?

“어떤 것에 관한 증거가 ‘없다’는 것은, 그 자체가 ‘없다’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는 증거가 아니다.”

그럴싸한가? 그럴싸한 정도가 아니라 설득력이 넘친다. 웬만한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자그마치 미국 국방부 장관을 두 번이나 지낸 도널드 럼즈펠드의 말이다. 그는 불과 43세의 나이에 미국의 최연소 국방부 장관이 되었고, 무려 68세의 나이에는 최고령 국방부 장관이 되었다. 첫 번째는 포드 행정부 시절이었고 두 번째는 조지 W. 부시 시절이었다. 그는 그럴싸한 말로 전쟁의 논리를 만들었다. 미국은 이라크를 침공하여 이라크 군을 괴멸시켰다. 그리고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 미군도 4,400명이 희생되었다. 7,480억 달러의 전쟁비용이 들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대량 살생 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 단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위해서 치른 대가가 너무 크지 않은가!

태양계 바깥에 있는 행성을 외계 행성이라고 부른다. 다행히 태양계에서 가장 가까운 별인 프록시마 센타우리 별 곁에서도 외계 행성이 발견되었다. 그의 이름은 ‘프록시마 b’.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행성 ‘화성’과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외계 행성 ‘프록시마 b’ 정도는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게 이웃사촌의 도리다. 프록시마 b는 생명체 거주 가능 구역에 위치해 있다. 별에 너무 가깝지도 않고 너무 멀지도 않은 안성맞춤인 곳에 놓여 있다는 뜻이다. 혹시 여기에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지 않을까?

설사 프록시마 b에 지적 생명체가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존재가 우리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거나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만날 수가 없다. 거기까지 가는 데 빛의 속도로 날아가도 자그마치 4년 3개월이 걸린다. 거기까지 유인 우주선을 보내는 데는 너무나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므로 물리적으로는 물론이고 정치적으로도 불가능하다. 보이저 1호 같은 무인 탐사선을 보낸다고 하더라도 가는 데 7만 년이 걸린다. 기껏해야 우리는 전파 통신으로 대화를 할 수 있을 뿐이다. ‘어이!’ 하고 부른 후 ‘게 누군가?’라는 답을 듣는 데만 8년 반이 걸린다.

“지구는 선물이며, 차갑게 죽어 있는 우주 공간 한가운데에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섬이다. 하지만 우리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있다.”

독일의 인기 과학프로그램 ‘쿼크스 앤드 코’를 진행한 랑가 요게슈바어의 말이다. 굳이 그의 말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누구나 우리가 우주 속에서 외로운 존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행동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아이들은 선물을 받으면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일단 선물꾸러미를 거칠게 찢어 내용물을 꺼낸다. 그리고 이리저리 맞춰보고 시험해 본다. 잘 안 된다. 그제서야 사용설명서를 읽는다.

애들만 그런 게 아니다. 우리가 딱 이렇다. 지구는 우리가 받은 유일한 크리스마스 선물이다. 그런데 우리는 사용설명서를 제대로 읽기 전에 선물꾸러미를 뜯어 내용물을 마구잡이로 다루었다. 이제야 분야별 사용설명서를 만들고 때때로 나누어준다. 세계 습지의 날 2월 22일, 물의 날 3월 22일, 지구의 날 4월 25일, 생명 다양성 보존의 날 5월 22일, 바다의 날 5월 31일, 세계 환경의 날 6월 5일이 지났다. 그나마 우리가 지구와 환경에 대해 걱정하고 다짐하는 날은 이제 6월 17일 사막화 방지의 날만 남았다.

사용설명서를 먼저 잘 읽자. 우리가 살만한 외계 행성이 설사 있다고 해도 또 그곳의 거주민들이 우리를 친절하게 초대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거기에 가지 못한다. 지구는 유일한 섬이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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