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세대 여성운동가ㆍ영부인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사신 분”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성경 시편 23편) 10일 오후 11시 37분 서울 서대문구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의 한 병실에서는 찬송가가 울려 퍼졌다. 대한민국 1세대 여성운동가이자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반자였던 이희호 여사는 힘겹게 입을 움직이다 이내 눈을 감았다. 향년 97세였다.
이 여사의 아들 김홍업 전 국회의원과 김홍걸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상임의장을 비롯한 가족들, 김 전 대통령과 정치적 풍파를 함께 겪었던 동교동계 의원 등이 이 여사의 마지막을 지키며 시편 23편을 낭송했다고 최경환 민주평화당 의원은 전했다. 시편 23편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 여사가 좋아하는 구절이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가족들의 찬송가를 따라 부르려고 입을 움직이시면서 편안하게 하늘나라로 가셨다”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박 의원은 “‘편히 가십시오. 하늘 나라에서 대통령님도 큰아들 김홍일 의원도 만나셔서 많은 말씀을 나누세요’라고 고별인사를 드렸다”고 덧붙였다.
김홍업 전 의원과 김홍걸 위원장은 이 여사에게 “어머니 사랑합니다. 편히 쉬십시오. 감사합니다”라고 마지막 말을 건넸다고 한다.
이 여사는 10일 저녁 혈압이 떨어지면서 상태가 위중해졌다. 가족들은 이날 오후 10시쯤 모여 만일의 상황에 대비해 병실을 지켰다.
최 의원은 병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 여사님은 단순히 내조자, 영부인으로서의 역할에 그치지 않고 김 전 대통령과 동행하신 분이다. 특히 여권 신장을 위해 독보적인 활동을 하셨다”고 말했다. 그는 “1962년 김 전 대통령과 결혼한 뒤 김대중 대통령 납치사건, 감옥 생활, 망명 등 30년 가까운 고난의 생활이었다”면서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사신 분”이라고 덧붙였다.
이 여사의 빈소는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 조문은 오후 2시부터 할 수 있다. 발인은 14일, 장지는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이다. 이 여사의 장례는 가족들의 뜻에 따라 사회장으로 엄수된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