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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방송통신대의 시험 풍경

입력
2019.06.12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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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지난주 일요일에 나는 방송통신대 출석 대체시험을 쳤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에도, 같은 날 시험을 본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나는 올해 방송통신대 중어중문학과에 편입했다. 처음에는 출석수업을 신청했다.

방송통신대 출석수업이란, 오프라인 강의실에서 교수님 강의를 직접 듣는 것이다. 교수님들이 전국 지역대학을 순회하며 오프라인 강의를 연다. 사정이 있어 내가 속한 지역대학에서 교수님 수업을 듣지 못해도, 다른 날짜에 다른 지역에서 하는 수업을 다시 신청할 수 있다. 즉 전국 어디서나 출석수업을 들을 수 있고, 그 기회도 여러 번 있다.

꼭 대면 수업을 듣고 싶은 과목이 있어 출석수업 신청을 했다. 일정을 일찌감치 비운다고 비워는 놓았다. 그러나 내가 속한 지역대학 시간표가 나오고 보니 결국 일과 겹쳤다. 밥벌이가 우선이다. 나는 허겁지겁 아직 출석수업이 진행되지 않은 지역을 찾아 다시 신청을 했다. 한 달 뒤였다. 그러나 막상 그때가 되고 보니, 또 다른 재판과 겹쳤다. 나는 다시 전국 각지의 출석수업 일정을 들여다보았다. 늦었다. 이제 와서 출석수업을 들으려면 울산 정도까지 가야 했다. 그때가 되어 다시 별일 없기를 기대하기도 어렵고, 먼 길을 다녀올 자신도 없던 나는 결국 출석 대체시험을 신청했다. 출석 대체시험은 나처럼 출석수업을 듣지 못하는 방송통신대 학생들이 출석을 시험으로 대신하는 제도다.

틈틈이 강의를 들었다. 방송통신대 강의는 휴대폰으로도 들을 수 있고, 최대 2배속까지 빨리 감기도 할 수 있다. 나는 러닝머신 위를 걷거나 차에 탄 채로 졸며 강의를 들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다 듣지는 못했다. 방송통신대 교재는 전자책으로도 나온다. 나는 전자책 읽기 기능을 이용해 자기 전에 교재 내용을 들었다. 솔직히 고백하면, 듣다 보면 잠이 잘 왔다.

그렇게 첫 학기를 보내고 집 근처 고등학교에 가서 출석 대체시험을 봤다. 아주 오랜만에 OMR카드를 작성했다. 나는 학창시절 내내 OMR카드를 작성해 본 세대다. 1교시, 나는 ‘컴싸(컴퓨터용 사인펜)’로 자신만만하게 이름과 학번을 썼다. 2교시, 1교시와 같은 감독관 선생님들이 들어와 OMR카드 작성 요령을 안내하며 말했다. “맨 위에 2019년 1학기라고 쓰셔야 합니다. 이거 빠뜨리신 분들이 많았어요.” 듣고 보니 생각이 났다. 아뿔싸, 저 ‘빠뜨린 분’이 나다! 나는 조금 덜 자신만만하게, 연도와 학기와 이름과 학번을 썼다.

시험장에는 사람들이 아주 많았다. 나이대도 성별도 다양했다. 시험을 치는 사람도 많았고, 기다리는 사람도 많았다. 내가 2교시 시험을 친 강의실에는, 마치 새것 같은 정장을 말쑥하게 갖추어 입은 중년 남학생이 들어왔다. 그는 강의실 안을 어색하게 두리번거리다가, 어디 앉아야 하는지 큰 소리로 물었다. 1교시에 다른 사람에게 같은 질문을 했던 나는 “아무데나 앉으시면 돼요”하고 그새 아는 체를 했다. 그는 창가 가운데 정도에 자리를 잡고, 펜을 쥔 포즈를 잡더니 일행에게 말했다. “나 사진 좀 찍어 줘.” 일행은 교실 문가에 서서 그의 모습을 찍었다. 찰칵, 찰칵, 휴대폰 카메라 소리가 났다.

방송통신대는 국가가 운영하는 평생 고등교육기관이다. 전국 단위로 운영되는 교육복지시설이기도 하다. 몇 살이든 대학교육을 처음 혹은 다시 경험하고, ‘대학 졸업장’이라는 꿈에 도전해 볼 수 있는 국립대학이다. 나는 7세부터 35세까지 학생이었고, 그중 반 이상을 ‘캠퍼스’에서 보냈다. 나는 그 오랜 시간을 새삼스레 돌아보았다. 대학 강의를 듣고 학자를 스승으로 만난 학술적 경험과, 수강신청을 하고 과제물을 내고 시험을 친 일상적 경험을 생각했다. 그 모든, 어쩌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어야 하는 기회들.

정소연 SF소설가ㆍ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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