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층 공략 ‘경제 대안 정책’ 승부수 던져
시장자율, 낙수효과 기존 패러다임 넘어야
‘정권 심판론’, ‘자유한국당 심판론’ 분기점
’민생 대장정’으로 ‘집토끼’를 잡았다고 자신한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이젠 ‘산토끼’를 손에 넣기 위해 잰걸음을 내딛고 있다. 도탄에 빠진 경제를 살릴 정책 대안을 내놓겠다며 ‘2020 경제대전환위원회’를 출범시킨 데 이어 청년 토크콘서트 개최 등 밀레니얼 세대와 접촉을 늘리고 있다. 중도ㆍ무당층의 지지를 얻고 한국당의 취약층인 청년과 여성을 끌어들이려는 전략이다.
황 대표 취임 100일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게 당 안팎의 평가다. 보수 결집으로 당 지지율을 높였고, 내부 갈등도 잠재웠다. ‘정치 신인’답지 않은 행보로 존재감을 키우고 차기 대선 후보로서의 입지를 굳혔다.
하지만 치고 빠지기 식의 ‘막말 퍼레이드’ 방치와 여당 정책에 무조건 반대하고 보는 ‘비토크라시’로 외연 확장에는 뚜렷한 한계를 보였다는 평도 만만찮다. 보수 진영 주요 인사들의 지적도 바로 이 지점이다. “황교안의 정치관이나 가치가 보이지 않는다.” “정권 비판을 넘어서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보수의 리더로서 확신을 주지 못한다.”… 한마디로 정권과 각을 세우는 것은 좋은데, 보수의 가치와 철학, 대안을 더불어 제시하라는 주문이다. 황 대표의 ‘산토끼 사냥’은 이에 대한 답인 동시에 그가 본격적인 정치 시험대에 올랐다는 의미다.
기승전 ‘반(反) 문재인’에서 탈피해 정책으로 대결하겠다는 황 대표의 선언은 바람직하다. 침체에 빠진 경제가 활로를 찾을 방안을 제시한다면 쌍수를 들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황 대표가 한국 경제가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과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한국당은 불과 6개월 전 김병준 비대위에서 전문가들을 동원해 ‘I(아이) 노믹스’라는 새 경제 정책 기조를 발표했다. 이름은 거창했지만 개인 자율과 시장을 중시해야 한다는 경제학원론 수준에 그쳤다. 구체적인 정책 역시 노조특권 타파, 공기업 구조조정, 대학 자율성 강화 등 상투적인 내용이었다.
황 대표가 최근 한 특강에서 밝힌 이른바 ‘H노믹스’ 구상도 별반 다르지 않다. ‘보수적 시장경제론’을 기반으로 해 최저임금 인상 반대, 규제 개혁, 법질서 확립, 교육 개혁 등 네 가지를 경제 살리기 과제로 제시했다. 한나라당 시절부터 줄곧 주장해 온 경제 정책 방향과 차별성이 없다.
지금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은 이전 정책을 재탕삼탕할 만큼 녹록지 않다.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지 못해 중진국 함정에 빠진 지 오래고 불평등ㆍ양극화는 악화일로다. 전 세계적 경제 둔화와 미중 무역전쟁은 상시적ㆍ구조적 문제가 됐다. 시장의 자유와 낙수효과에만 기대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것은 이미 이명박ㆍ박근혜 정부에서 판명됐다.
한국당은 경제 활력의 마중물이 될 적극적 재정 정책은 곳간 거덜내기로, 고용 부진 타개를 위한 공공 일자리는 값싼 노역으로, 저소득층 안전망 확대는 밑빠진 독에 물 붓기로 손가락질하고 있다.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할 여력이 없으면 국가가 나서 돕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굳이 경제 이론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게 정부와 국가의 존재 이유이기도 하다. ‘H노믹스’가 기존의 한국당 경제 패러다임을 넘어서는 새 비전을 보여주려면 먼저 국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황 대표가 민생을 강조하면서 국회를 외면하는 것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여당이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이유를 대는 것 자체가 국회 파행의 책임을 현 정권에 돌리려는 의도다. 국민은 그리 어리석지 않다. 황 대표는 “민생 현장은 지옥과 같았다”고 했다. 황 대표가 국민을 지옥에서 탈출시킬 경제 비전과 대안을 내놓는다면 국민들로부터 박수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정책 대안이란 것이 알맹이 없는 총선 대비 홍보성 전략이라면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현 정권 심판론’이 ‘자유한국당 심판론’으로 돌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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