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 라 라 라 러브 송”
일본 리듬앤블루스(R&B) 가수 구보타 도시노부는 1996년 발표한 ‘라 라 라 러브송(La La La Love Song)’이 지금 한국에서 큰 사랑을 받을 것이라 생각했을까. 지난해 백예린이 음악 공유 웹사이트인 사운드클라우드에 게재한 커버곡이 300만건 가까이 조회되며 이 노래가 20여년 만에 재조명됐다. 백예린의 ‘라 라 라 러브송’ 다시 부르기를 기점으로 한국에서 일본 시티팝이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시티팝은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 일본에서 유행한 팝 음악이다. 재즈와 R&B, 디스코에 이르는 다양한 장르가 일본 경제 부흥기와 맞물리며 독특한 느낌의 곡이 만들어졌다.
한국 2030세대는 지금 시티팝에 빠져있다. ‘아는 사람만 찾아갈 수 있는’ 음악 공간에서 당시 노래가 재발견되고,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유행으로 전파되고 있다. 곡이 쉽고, 흥겹게 춤까지 출 수 있다는 점이 사랑을 받는 이유다.
시티팝은 주로 바이닐(VinylㆍLP)바와 라이브 펍에서 감상할 수 있다. 예전 유행했던 시티팝 앨범 대부분이 CD와 더불어 LP로 출시된 덕분이다. 시티팝의 시대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으면서, 동시에 듣기 편하다는 장점이 있다. 서울 합정동 만평과 지하철3호선 삼각지역 인근에 위치한 바이브드 블러바드(VIBD BLVD) 등 바이닐 바와 연남동에 위치한 라이브 펍 채널1969이 대표적이다. 대구의 바이닐 펍 쉘터 등 지방에서도 시티팝을 즐길 수 있다. 유재관 쉘터 대표는 “주로 힙합 등 흑인음악을 틀지만, 계절과 분위기에 맞춰 시티팝을 선보이기도 한다”며 “시티팝의 대부로 불리는 야마시타 다쓰로, 그와 함께 작업했던 오오누키 다에코의 음악 등을 주로 듣는다”고 말했다.
국내 바이닐 바와 펍에서 일본 시티팝이 울려 퍼지기는 비교적 최근 일이다. 이들 바와 펍은 시티팝 뿐 아니라 여러 음악을 다룬다. 만평과 바이브드 블러바드는 시티팝을 비롯해 국내외에서 발매된 다양한 바이닐 음악을 선보이고 있다. 채널1969는 인디밴드 공연도 자주 열리는 복합문화공간이다. 간판이 따로 없는 등 이곳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가게를 찾기 어렵다는 점도 공통점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2030세대 사이에서 시티팝이 강세라는 점을 방증한다. 김다현ㆍ황성철 바이브드 블러바드 공동대표는 “시티팝은 이곳에서 선곡을 하는 여러 장르의 음악 중 하나”라면서도 “최근 많은 사람이 신청을 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시티팝을 모르는 사람도 금세 즐길 수 있다. 곡이 어렵지 않아 따라 부르기 쉽다. 시티팝을 즐기는 이들은 2030세대가 대다수였다. 채널1969에서 지난달 24일 열린 시티팝 공연 ‘디스 이즈 더 시티라이프’ 또한 청춘들을 위한 행사였다. 서울 연남동 한 귀퉁이에 있는 작은 지하통로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공연장에 수십 명이 춤을 추며 음악을 즐기고 있었다. 이날 장기하와 얼굴들 전 멤버로 팬들 사이에서 ‘양평이형’으로 불리는 하세가와 요헤이와 최근 떠오르고 있는 타이거디스코가 DJ를 맡았다. 둘 모두 낯설면서도 귀에 감기는 시티팝 선곡으로 힙스터에게 사랑받고 있다.
이날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새벽까지 이어진 공연은 여느 페스티벌 못지 않게 뜨거웠다. 개성 강한 옷을 입은 청춘들은 시티팝을 각자의 방식으로 즐겼다. 맥주와 간단한 안주를 먹을 수 있는 자리가 있었지만, 앉아있는 사람은 몇 없었다.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홀로 ‘막춤’을 추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라 라 라 러브송’ 등 유명한 시티팝이 흘러나오면 너나 할 것 없이 큰 소리로 ‘떼창’을 부르기도 했다. 말 그대로 각자 음악을 들으면서 놀기 위해 모인 것이었다. 이날 처음 시티팝을 접했다는 김슬기(29)씨는 “일본 노래가 생소했지만, 한 곡에서 다양한 장르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신선했다”며 “일본어 가사도 의외로 귀에 거슬리지 않아, 앞으로 자주 찾아서 듣게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시티팝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난해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점이 큰 매력이다. 일본 버블경제 시대를 대변하듯 음향도 풍성하다. 진흙 속에서 진주를 찾듯 알려지지 않은 곡을 발견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시티팝 공연도 시간이 갈수록 조금씩 늘어나는 추세다. 5년 전 처음 시티팝을 접했다는 홍성리(28)씨는 “1970년대 당시 주류 장르였을 만큼 듣기는 쉬운데, 지금 세대는 접해보지 않은 음악이어서 좋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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