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적보다 성장… 1군으로 ‘숙성’되는 2군 선수들
#KBO리그에서 20년간 최정상급 좌타자로 활약하며 ‘국민우익수’라는 별칭을 얻은 이진영이 은퇴 후 지도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하려 합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화요일자에 ‘이진영의 오하요! 센다이’를 연재해 그가 일본프로야구 라쿠텐 골든이글스에서 코치 연수를 하며 겪는 체험을 생생하게 전합니다.
KBO리그에서는 시즌을 치르다 보면 개막 전엔 별로 주목을 받지 않았던 선수들이 언론에 종종 등장한다. 주전 선수들이 부상이나 부진으로 빠진 자리를 대신해 활약하는 이른바 ‘깜짝 스타’다. KBO리그에서 뛰는 비주전급 선수들에게 시즌 전 목표를 물으면 열에 아홉은 “올해 1군에서 뛰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일본 선수들에게 같은 질문을 하면 “1군 선수가 되는 것”이라고 답한다.
어떤 차이일까. 일본에서는 2군에서 월등한 성적을 내도 1군에 바로 올라갈 자리가 생기지 않으며, 반대로 주전 선수가 부진하다고 엔트리에서 말소하는 일도 없다. 부상 등 변수가 발생했을 경우엔 어쩔 수 없이 대체 선수를 수급하지만 그 경우에도 임시 방편용 ‘스페셜리스트’만 긴급 수혈한다. 대타, 대주자, 대수비 요원을 따로 양성하는 이유다. 그리곤 주전 선수가 복귀하면 즉각 2군으로 돌려보낸다. 1차 지명 선수라든지 특출한 선수가 아니면 데뷔하자마자 1군에서 뛰는 일도 거의 없다.
그러면 2군 선수들은 언제 1군 선수가 될 수 있을까. 일본은 신인이 입단하면 야구 선수로 기초를 다지는 작업에 공을 들인다. 1군에서 부상 없이 144경기 풀타임을 소화할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키우는 데 오랜 시간을 할애한 뒤 기술 훈련을 병행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2년이고 3년이고 담금질한 선수에 대해 감독의 확신이 서면 1군 선수라는 훈장을 달아주는 것이다. 1군 무대를 꿈꾸는 선수들에게 가혹한 얘기일지 모르나 루키리그부터 트리플A까지 마이너리그 6단계를 거쳐야 메이저리거가 될 수 있는 미국프로야구에 비하면 양반이다.
얼마 전 2군 선수들의 월간 성적표를 보고 3할 타자가 거의 없어 의아했는데 이런 일련의 선수 육성 시스템을 이해하고서야 수긍이 갔다. 2군은 성적을 내는 곳이 아니라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곳이라는 구단의 인식이 깔려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KBO리그의 2군은 선수도, 팀도 성적에서 자유롭지 않아 ‘내공’을 쌓는 데 한계가 있다. 무엇보다 선수층이 얇다. 병역 의무의 유무도 선수들의 인내와 여유에 영향을 미치는 듯하다. 한국 선수들은 전성기 2년을 군대에서 보내야 하기 때문에 심적으로 조급하다. 한국 야구의 현실에서 당장 실현되기는 어렵지만 야구인의 한 사람으로 ‘반짝 스타’가 아닌 ‘숙성된’ 1군 선수를 만들어가는 일본의 시스템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주말 2개월 만에 한국에 잠시 돌아왔다. 라쿠텐에서 파견된 직원과 함께 국제 스카우트 업무를 부여 받았다. 연수의 연장선상으로 당분간 KBO리그를 관찰할 계획이다.
전 KTㆍLGㆍSK, 야구대표팀 전력분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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