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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갈등, 돈, 질병을 부르는 냄새

입력
2019.06.1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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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CJ 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기생충’이 연일 화제다. 한국 영화 최초로 칸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영화다. 국내 개봉 10일 만에 600만 관객을 돌파했단다. 반 지하방에 사는 백수 가족 기택(송강호)네 장남 기우(최우식)가 박 사장(이선균)네 과외 선생 면접을 보러 가면서 시작되는 예기치 않은 사건을 그렸다. 이 영화의 핵심은 계층 간의 갈등. 그 갈등의 모티브는 냄새다. 반지하의 꿉꿉한 (기생충) 냄새, 가난의 냄새가 ‘선을 넘으면서’ 갈등이 드러난다. 조지 오웰도 1939년 소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에서 “하류 계층은 냄새가 난다”고 썼다. 이 냄새는 인종 혐오, 종교적 적개심, 윤리성보다 더 극복할 수 없다고 썼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층 갈등이 냄새로 비유된다는 것이 흥미롭다.

냄새는 기억의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홍차에 적신 과자 마들렌을 한 입 베어 무는 순간 어린 시절의 기억을 떠올린다는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의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냄새와 기억을 연결할 때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냄새와 기억의 연결고리는 과학적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심리학자이자 신경과학자로 ‘욕망의 향기’의 저자인 레이첼 헤르츠 브라운 대학 교수는 후각이 뇌에서 감정과 기억을 담당하는 부분에 함께 있기 때문에 기억을 떠올리고 감정을 느끼는 데 다른 감각보다 더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이 후각의 효과를 마케팅은 놓치지 않는다. 향기 마케팅, 아로마 마케팅이 그것이다. 소비자가 특정 냄새를 맡았을 때의 심리 상태를 파악하여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마케팅 전략이다. 계피향의 롤빵을 파는 시나본은 근처만 가도 빵 냄새가 진동하며 식욕과 구매 욕구를 함께 돋운다. 미국의 의류 업체인 ‘애버크롬비 앤 피치’는 매장의 천장에 분사기를 설치해 자사의 대표 향수인 ‘피어스’를 분사했다. 그 결과 매장을 방문한 고객은 더 오래 머무르고 구매 욕구도 상승했다고 한다. 던킨 도너츠는 국내에서 향기 마케팅으로 성공한 사례로 꼽힌다. 커피 판매를 제고하기 위해 출근길 버스에서 라디오 광고가 나올 때 버스 안에 설치된 분사기로 커피향을 분사했다. 버스 탑승자들은 커피 냄새에 자극되었고, 버스에서 내린 후 버스 정류장에서 던킨 도너츠 광고에 한 번 더 노출되었다. 이 마케팅으로 던킨 도너츠의 고객 방문율은 16%, 커피 판매는 29% 정도 증가했다고 한다.

향기 마케팅은 담배 마케팅에서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가향 담배다. 멘톨, 망고, 코코아, 민트, 사과, 딸기 향 등 종류도 다양하다. 궐련 담배, 캡슐 담배는 물론 신종 전자담배에도 수많은 가향 성분이 포함된다. 멘톨 향은 말단 신경을 마비시켜 담배 연기를 흡입할 때 느껴지는 자극을 줄여준다. 가향 물질인 설탕과 같은 감미료가 연소되면 발암 물질로 알려진 아세트알데히드가 발생한다. 가향 물질은 기존 담배의 찌들고 역한 냄새를 대체함으로써 비흡연자가 흡연을 시작하는 데 어려움을 해소하고,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담배 유해물질을 더 많이 흡수하도록 함으로써 중독 가능성과 암 발병 위험을 높이기까지 한다. 미국 CNN은 지난 5월 액상 전자담배의 가향 성분이 심혈관 세포를 손상시킬 수 있다는 스탠퍼드 대학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위험성 때문에 브라질, 유럽연합 등 여러 나라에서 담배의 가향 성분을 금지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규제 법안조차 없다.

봉준호 감독이 영화의 모티브로 사용한 ‘냄새’는 계층의 갈등을 실감나게 다루었다. 성공적인 향기 마케팅은 회사의 이익을 가져오고,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한다. 그러나 가향 담배는 회사의 이익뿐 아니라, 소비자의 질병을 부를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다.

백혜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소비자위해예방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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