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서 서로 속내 털어놓은 한일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ㆍ교류 활성화 필요성엔 공감
“애초 ‘피해자 구제’ 개념을 우선시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일본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었다.”(아와쿠라 요시카츠 일본 교도통신 기자)
“과거사를 관리하며 신(新)동북아체제에 함께 대응하자는 한국의 제안을 일본이 무시했다.”(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 소장)
일본 측은 한국의 홀대가 서운하고, 한국 측은 일본의 옹졸함이 실망스럽다. 관계가 악화일로인 한일이 요즘 상대방에게 느끼는 감정은 이렇게 요약된다. 7일 일본 도쿄(東京) 게이오대에서 한국언론진흥재단과 한일미래포럼, 게이오대 현대한국연구센터가 주최한 제7회 ‘한일 언론인 심포지엄’은 양국 학자ㆍ언론인들이 서로 속내를 털어놓는 자리였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정부가 냉정을 되찾고 교류부터 다시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양측이 공감대를 이뤘다.
상대적으로 상황을 더 비관하는 쪽은 일본이었다. 더 이상 자국이 한국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국가 대접을 못 받고 심지어 중국ㆍ북한보다 우선순위가 밀리는 게 관계 악화의 핵심 요인이라고 여기는 것 같았다. 오쿠조노 히데키 일본 시즈오카현립대 교수는 “중국이 급부상해 압도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터에 민주화를 이루고 난 뒤 자신감과 여유가 생긴 한국에게 일본의 비중이 작아진 건 당연한 일”이라며 “‘국제사회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과거 같지 않다’는 2012년 독도 방문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이미 일본의 자존심은 상처를 입었다”고 말했다.
이는 체념으로 이어진다. 아와쿠라 기자는 “대일 관계를 ‘가해자ㆍ피해자’로 바라보는 문 대통령에게 양보를 전제로 하는 정치적 타협을 기대하기는 어렵지 않겠냐는 생각”이라고 토로했고, 나카지마 겐타로 요미우리신문 기자는 “한국을 파트너라고 생각하는 외무성 관료가 줄었다는 걸 실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면 한국 측의 경우 일본이 너무 과민한 것 아니냐는 인식이 강하다. 추규호 한일미래포럼 대표(전 주영 대사)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때 한일 양자회담이 없을 수 있다는 일본 측 경고는 외교 했던 사람 상식으로 믿기 어렵다”며 “초청 받은 나라가 회담을 하고 싶다는데 호스트(의장국)가 거부한다는 건 외교관 일을 하면서 들어보지 못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김현철 교수는 “중국이 2010년대 일본을 능가할 정도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한반도가 분단 구조를 벗어나고 있는 현상은 각각 100년과 70년 단위의 커다란 변화인데도 아베 정권 들어 일본 외교는 이를 따라잡지 못하고 갈라파고스화하고(고립되고) 있는 것 같다”며 “신동북아, 신한반도 체제를 대비해 한일이 미래지향적으로 협력하되 과거사는 관리하자는 한국의 ‘투 트랙’ 제안에 철저히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전향만 요구하는 일본의 일관된 ‘원 트랙’ 포지셔닝은 아쉽다”고 했다.
그러나 진단만큼 양측의 해법이 다르지는 않았다. 조양현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중 무역 전쟁의 장기화 가능성과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이후 한중 관계의 경색, 북한 및 한반도 문제의 안정화 필요성 등을 감안할 경우 한일 협력의 필요성은 어느 때보다 크다”며 “미중 양국이 정면으로 충돌하거나 양국이 주도해 지역 문제를 결정해 버리는 상황은 다른 역내 국가들로서는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라고 했다. 조 교수는 “한일이 서로 상대방의 전략적 가치를 재인식했을 때 과거사 화해 가능성도 커진다”고 강조했다. 오쿠조노 교수도 “미국이 아시아 개입을 줄여가고 중국이 자국 중심 질서를 구축하려는 상황임을 감안할 때 전략적 파트너십을 구축하려는 냉정한 이성이 한일 양국에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정부 간 갈등으로 악화한 양국 관계의 복원을 유도할 수 있는 핵심 지렛대가 민간 교류의 활성화라는 것도 양측의 공통된 생각이다. 유명환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전 외교통상부 장관)은 “과거 같은 한일 관계의 복원력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양국 국민이 자주 만나고 얘기하고 가까워져야 한다”며 “청소년ㆍ학생들을 교류시켜 서로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려는 노력을 이제라도 기성 세대가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미네기시 히로시 니혼게이자이신문 편집위원은 “왜곡된 생각을 가진 한일 양국 정치 리더가 민간 교류를 방해하지 않는 것도 긴요한 일”이라고 했다.
도쿄=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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