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젊은 정치] <2> 2부 리그가 아닙니다 
 당규선 ‘청년 우대’ 규정, 실제론 비례대표 마지노선 순번도 밀려나 
 청년 정치 시작한 의원들조차 “애들은 기회 많잖아” 쉽게 내뱉어 
 당선 가능성? 정치력? 참신성?… 실력의 잣대 제시하는 정당들 없어 
. 선거를 앞두고 발표되는 각종 가산점과 청년 우대 정책에도 당내 청년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그때나 지금이나 결정적 순간에 “애들은 나중에”를 외치는 풍토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사진은 2014년 국회의 모습. 한국일보 자료사진

비례대표 후보 최종명단이 청년들을 발칵 뒤집어 놨다. 20대 총선을 목전에 둔 2016년 3월 더불어민주당의 얘기다. 청년 비례대표 출신으로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두 사람의 당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런 성토가 올라왔다.

“당이 분란이 있는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하니 말을 아끼고 아끼는 중이다. 그러나 내가 말을 하지 않으면 역시 힘없는 청년들은 계속 무시해도 되는 존재로 인식할까 두렵다. 그리곤 결국 내 사람을 집어넣어 승리했노라 웃음 짓는 것이 두렵다. 그런 것이 정치력이라 평가받는 세상이 두렵다.” (2016년 3월 김광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이로써 청년 비례대표는 나와 김광진 의원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비대위는 스스럼없이 당헌ㆍ당규를 위반하는 것도 모자라, 이제 현행법도 작심하고 위반한다. (…) 약자에 강한 정치인들에게 약자를 위한 정치를 기대할 수 있을까? (…) 나 역시 청년들을 상대로 투표를 독려하고 더민주(더불어민주당) 지지를 호소하기가 두렵다.” (2016년 3월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페이스북)

당시 더불어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명단에 오른 청년은 16번 정은혜 후보, 24번 장경태 후보다. 20대 총선 직전 정당 지지도를 기준으로 한 당선 안정권은 15번이었다. ‘청년, 노동 분야는 해당 전국위원회에서 선출한 2명의 후보자를 우선순위에 안분한다’는 당시 당헌ㆍ당규를 위반한 데다, 여성은 홀수에 배정한다는 공직선거법 규정도 어긴 결론에 비판이 쏟아진 것이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재였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원래 15번이었어야 할 이가 당내 약자인 청년이 아니었어도 과연 이렇게 함부로 했겠느냐는 의구심이 청년들의 참을성을 건드렸다.

한국일보가 ‘국회 비례성’ 문제를 묻기 위해 만난 취재원들은 정당과 직위를 초월해 뇌리에 깊이 박힌 장면으로 유독 이 상황을 공통 언급했다. ‘청년을 희생시킨 순서 변경’이라는 돌이 2030세대에 날아와 남긴 충격이 그만큼 컸다는 얘기다. 고액 참가비, 부실심사, 특혜논란의 기억도 소환됐다. 그 사이 청년을 ‘우선순위’에 놓는다는 해당 규정은 “비례대표 우선순위를 정함에 있어 여성, 청년, 노인, 장애인, 노동, 직능, 농어민, 안보, 재외동포, 국가유공자, 과학기술, 다문화 등의 전문가를 고르게 안분하여야 한다"는 표현으로 대체됐다. 당의 문화와 인적 구성에 따라 논란의 풍경은 달랐지만, 닮은 꼴 공천 논란은 여러 정당에도 있었다.

각기 치른 공천 논란을 의식한 탓인지 각 당은 21대 총선룰 정비를 서둘러 시작하느라 분주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청년 당원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애들은 나중에”라는 정서가 만연한 건 그때나 지금이나 오십보백보라는 판단 탓이다. ‘젊은 것들’ 무용론을 주장하는 당내 일각과 이를 바라보는 청년들의 괴리는 선진국과 한국의 40세 이하 의원 비율의 격차(유럽 미국 일본 등 6~41%, 한국 0.66%)만큼이나 크고 깊다.

역대 국회의원 당선자 연령구성비. 그래픽=신동준 기자

일각이 내세우는 ‘청년 배려 불가론’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젊은 친구들 실력이 없잖아.” “앞으로 기회가 많잖아.” “가산점 주잖아.” “비례대표 공천 주잖아.” 청년들의 생각을 물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4대 불가론이 청년 세대의 반박과 만나면 되레 4대 의문이 도출된다. “실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중장년 후보자 실력은 어떻게 검증됐나.” “스스로 30~40대에 등원한 기억은 어디로 갔나.” “지역에서 이미 후원회, 조직을 돌리는 후보를 가산점만으로 어떻게 능가하나.“ “청년은 비례 한두 명으로 구색만 맞춰도 된다는 프레임은 누가 만들었나.”

 ◇ “애들이 뭘 알아” 

“젊은 정치인이 많아져야 한다는 게 말이야 옳지. 젊은 애들 실력이 없는 걸 어떻게 해. 떨어지더라도 노력하고 또 도전하고 지역구를 잘 닦아서 해야지.” 한 현역 정치인이 전한 ‘청년 대표성’에 관한 입장을 요약하면 이렇다.

최근 만난 각 정당의 젊은 정치인, 당직자들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은 얘기’라고 했다. 한 원내 정당 관계자는 “기업이 돈 되는 곳에 투자하듯, 정당이 표가 되는 후보를 공천하겠다는 것은 비난하기 어려운 문제”라면서도 “다만 어떻게 당내에서 스스로 이 실력을 육성하고, 어떤 합리적 기준으로 실력을 검증할 것인가에 대한 기준 없이 그때그때 ‘자강론’만을 강조하는 것은 안타깝다”고 반박했다.

과연 실력이라는 것이 당선 가능성인지 행정감사 능력인지 노련한 정치력인지, 또는 의정활동 계획, 도덕성, 참신성, 계파족보, 투쟁이력, 조직 동원력, 연공서열 등 그 무엇인지 일관된 철학으로 제시하는 정당이 드물다는 의문이다. 입법가나 정치인으로서 필요한 덕목과 인재상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기도 하다.

이 참을 수 없는 ‘실력’의 잣대에 대한 의문은 도처에서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80년대 운동이력을 강조하는 선배들 사이에서 늘 ‘호래자식’이 된 기분이었다”는 한 여권 인사는 “애들은 모른다는 말로 젊은 후보나 의원을 비난하는 맥락을 보면, 의정활동 전문성을 꼬집는 게 아니라 투쟁이력 부재를 말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의석 한 자리가 얼마나 아까운데, 우리 옛 동지들 가운데 아직 한 자리 못한 친구가 여기도 저기도 있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애들한테 줄 수 없지 않냐는 느낌인 거예요. 심지어 인간미 넘치는 정치인이라 믿어온 분들이 발휘하는 최대한의 미덕이 그겁니다.”

한 야당 중진의원은 “육성과 후보 검증에서 비롯된 공천에 대한 정의나 기본 모델, 철학 없이 급하게 선거 때 눈에 띄는 사람을 뒤죽박죽 간택하다 보니, 기존 구조에 적응 잘하는 청년, 행사 동원을 일시적으로 많이 해내는 사람이 실력자로 눈에 띄는 참사가 벌어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실력 잣대’가 제멋대로다 보니 어쩌다 배출된 청년 의원이 활약하기 힘든 제약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한 정치권 인사는 “대표성을 지니기 어려운 인물을 급하게 공천하거나, 대표성을 갖췄더라도 현역에 유리한 지역구의 상황 등은 모두 외면한 채, 단 한 두 명의 실패가 나오면 ‘저것 봐 청년들 시켜놨더니 하는 게 뭐야’라며 청년 전체의 실패로 몰고 가는 프레임이 답답하다”고 성토했다. “열심히 법안을 내고 자기정치를 해도 젊은 정치인을 2부 리그로 폄하하기 일쑤죠.”

정현호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은 “공천이라는 게 공직자 후보 추천의 약자인데도 불구하고 실력, 자질, 역량 중심의 평가보다 계파나, 권력 기회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말로 실력을 아무리 강조해도 허망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라며 “결국 헌신해 온 청년들이 실망하고 환멸을 느끼고 당을 떠나는 가장 큰 이유”라고 꼬집었다.

진지하게 출마한 선거에서 "이번에는 연습삼아", "아직 젊은데 나중에"라는 말을 듣는 청년 후보들의 마음은 착잡하기만 하다. 홍인기 기자
 ◇ “앞으로 기회 많잖아” 

“30대 후반 국회에 입성한 분이 공천심사를 하면서 42세 기초의원 후보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무 젊은데 다음에 해도 되겠다’라고요. 이 말을 듣고 경악했습니다.”

“평소 존경하던 정치인이 있었어요. 30대 초반 국회에 들어와 중진의원이 된 경우인데, 청년 조직 명함을 드렸더니 ‘아, 언더(under)였네’하고는 더 말이 없더라고요. ‘열심히 하라’고 격려라도 할 줄 알았는데. 스스로 청년으로 정치를 시작했으면서도 당내 청년들에 대해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게 놀라웠죠. 대화가 안 통하는 게 아니라 ‘우리를 아직 알 필요가 없고 알고 싶지도 않은 존재로 보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일보 창간기획 ‘스타트업! 젊은 정치’ 취재를 위해 만난 다수의 인터뷰 대상자는 청년으로 정치를 시작한 선배들조차 “너희는 아직”이라는 말을 쉽게 하는 황당함에 대해 토로했다. 정치권에 워낙 이런 논리가 횡행하다 보니 당내 청년세대와 젊은 유권자들조차 이 논리를 반복한다는 우려도 나왔다. 바른미래당 마포구청장 후보로 뛴 조용술 사단법인 청년 365 대표는 “선거에 진지하게 임했는데 ‘단체장 하기 너무 젊은 것 아니냐’거나 ‘이번에는 연습이라 생각하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라며 “정치인이라 하면 머리 희끗희끗하고 양복 입은 분이 의전 받는 이미지가 유권자들에 조차 너무 익숙해진 것”이라고 우려했다.

왕복근 정의당 전국위원 역시 “정치하기 좋은 나이에 대한 편견이 청년들에도 존재한다”라며 “젊으면 다음에 기회가 있지 않느냐라거나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데 무슨 정치냐는 말을 정작 청년들에게서도 자주 듣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떤 거물 정치인의 곁을 지켰다거나 같이 화염병을 던졌다는 과거지향의 이력 말고, 청년 후보의 인물ㆍ운동ㆍ성장에 대해 검증하고 확인할 공통의 개념이 없다 보니 청년 정치인의 설 자리는 좁디좁을 수밖에 없는 거죠.”

더불어민주당 21대 총선 경선 가산점. 그래픽=신동준 기자
 ◇ “가산점 주고 비례 주잖아” 

공천과 경선 과정에서 적용되는 가산점이 청년 정치인의 정치 환경 개선에 유효하냐에 대해서는 생각이 엇갈렸다. 첨예한 경쟁 상황에서 가산점이 결정타로 기능한다는 의견과, 사실상 무의미하다는 분석이 비등한 것. 가산점을 주더라도 기존 지역구의 정치 문법이 청년들의 세대적 특성과 괴리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꼭 청년이 아니더라도 지역에서 후원회, 각종 단체 조직으로 무장해 표를 결집하는 현역 의원들과 정치신인이 가산점만으로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한 여당 당직자는 “실제 지역 경선에서 일정 경쟁력을 가지고 싸울 수 있는 후보는 30대 후반 정도인데 가산점 15%를 적용한다 해도 승산은 크지 않다”라며 “그간 정말 잘 싸운 청년 후보의 성적이 권리당원 1000명 중 400표를 얻는 결과였던 점을 감안하면 30% 가산점을 받아도 520대 600으로 지는 결론”이라고 분석했다.

조용술 대표 역시 “청년이 표를 모을 실력이 없다고들 하는데 지역구에서 후원회와 사무실을 만들어 둘 수 있는 현역 의원과 그럴 수 없는 신인의 경선 자체가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는 점이 간과돼 있다”며 “아무리 자질이 훌륭해도 당의 지지 없이 이런 상황을 다 헤쳐나가긴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가산점 인식에 관한 설문조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청년의 정치활동 보장에 관한 설문조사. 그래픽=신동준 기자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년비례에서 답을 찾으려는 경향이 눈에 띄지만, 여기에도 회의적인 목소리는 존재한다. 여의도 주변에선 청년비례를 두고 ‘선악과’, ‘필요악’, ‘희망고문’으로 부르기도 했다. 한 야당 당직자는 “당에서 죽을 힘을 다해 뛰고, 눈치 보게 만들고, 딱 자기 앞번호에서 끝나게 비례후보 공천을 하는 것을 희망고문, 열정페이 말고 뭐라 부를 수 있겠냐”고 일갈했다. 이준석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이를 두고 “청년비례를 통해 배출된 힘없는 초선의원 하나가 청년 일자리 문제 같은 거대담론을 다 떠맡는 구조를 만들고, 이 비례대표 한 자리를 놓고 당에서 청년들이 헌신 경쟁을 하며 싸우게 만드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결국 필요악에 해당하더라도 일정 기간 비례대표를 통해 청년 대표성을 확보할 필요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독점 구조를 깨 전반적인 국회 대표성, 비례성을 끌어올릴 장기해법이 필요하다는 진단이다. 바른미래당 싱크탱크 바른미래연구원의 최상훈 책임연구원은 “청년비례든, 청년 최고위원이든 여러 대목에서 ‘청년’이라는 용어가 일종의 구분선이자 배제의 기제가 되는 현실”이라며 “딱 그 한두 명 몫 외에는 내주지 않겠다는 상황에서, 청년비례는 그야말로 ‘그것마저 없으면 정말로 씨가 마르니 필요한’ 필요악 같은 대상이 돼 버려 선거제 개혁 등 보다 궁극적 해법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고 분석했다.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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