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비 남으면 다음 예산 깎인다” 2016년 12월에만 장비 40% 구입
계약 쪼개 경쟁입찰 회피 정황에 소액직접구매 등 부적절 집행 다수
2016년 기초과학연구원(IBS) 산하 연구단이 그 해 12월에 사들인 실험장비는 10개 중 4개꼴(40.9%)이다. 이듬해에도 실험장비 구매 건수의 28.4%가 연말에 몰렸다. 연구에 필요한 물품을 제 때 구매하는 게 아니라, 지원받은 연구비를 소진하기 위해 연말 집중적으로 예산을 써버린 것이다. 연구비가 남으면 다음 해 연구 예산이 깎일 수 있기 때문이다. 소모품인 시약 구입 시기도 2016년엔 전체의 24.5%, 2017년엔 30.2%가 12월에 몰렸다.
최연택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정책위원장은 “실험장비와 시약이 연말에만 필요했다고 보긴 어렵다”며 “예산이 삭감될까 봐 멀쩡한 보도블록을 갈아엎는 지방자치단체처럼 연구단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교수는 “특정 사업에 선정되면 실제 사용 비용과는 상관없이 연구비를 지원하는 국내 연구개발(R&D) 방식의 한계”라며 “실비 중심으로 이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IBS 산하 30개 연구단은 올해에만 연구ㆍ운영비로 평균 65억원을 지원받았다.
7일 한국일보가 입수한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IBS 특별점검 및 개선방안 비공개 보고서’는 ‘노벨상의 산실이 되겠다’며 야심 차게 출범한 IBS가 2011년 설립 이후 얼마나 방만하게 운영됐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부가 매년 2,000억원이 넘는 돈을 IBS에 투자(올해 예산 2,365억원)하고 있지만 정작 IBS의 예산 사용 방식은 ‘낙제점’이라는 게 특별점검단의 결론이다. 앞서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IBS 방만 운영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정부는 내ㆍ외부 전문가 14인으로 점검단을 구성, 지난해 연말까지 특별점검을 실시했다.
특별점검단은 “경상비, 연구비 등 다양한 항목에 식대와 회의비 등을 편성해 예산 남용과 관리부실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2017년에만 식대와 회의비 등으로 6억4,300만원(4,020건ㆍ건당 약 16만원)이 집행됐다.
행정조직의 부실 운영과 함께 연구단의 부적절한 예산 집행 정황도 드러났다. IBS 산하 분자활성촉매연구단과 시냅스뇌질환연구단에선 경쟁입찰 대신 임의로 계약자를 선정(수의계약)하기 위해 입찰 금액을 2,000만원 아래로 낮춰 여러 건 계약하는 분할 구매계약 의심 정황이 각각 2건, 4건 발견됐다. 2,000만원 이상 계약은 경쟁 입찰해야 하고, 이하일 경우 수의계약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이를 악용했다고 보는 것이다.
연구단이 물품을 살 때 외부 검수 절차 없이 자체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소액직접구매 건수도 지나치게 많다고 특별점검단은 판단했다. IBS는 연구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겠다는 출범 취지에 따라 소액직접구매 금액 기준(건당 1,000만원)을 다른 국책연구기관(건당 300만원)보다 높게 책정했다. 그런데 이처럼 IBS 본원의 관리감독을 받지 않는 연구단의 소액직접구매 건수가 2017년에만 1만6,000건에 달했고, 금액 규모도 263억원이나 됐다.
예산 집행은 방만했지만, 정작 연구 인력 처우에는 인색했다. 연구직의 연구연봉제에서 같은 구간에 속한 인력의 연봉이 4배 이상 차이가 날 수 있게 연봉 상ㆍ하한선을 정했는데, 성과를 낸 연구직에게 높은 보수를 지급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홀대 논란까지 불거졌다. 실제 석ㆍ박사 연구직 연봉이 대졸 행정직원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IBS 관계자는 “연구단장이 연구원의 연봉을 정할 때 하한선에 가깝게 급여를 책정하다보니 연구직을 홀대한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 같다”며 “연봉 하한선을 단계적으로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소액직접구매 비용 기준을 낮추는 등 최근 불거진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연구단의 자율성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노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감사담당관은 “이달 중 IBS에 감사 처분 결과를 내려 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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