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추념식에서 고 성복환 일병 아내가 쓴 편지 대신 낭독
“내게 남겨진 것은 젊은 시절 당신의 증명사진 하나뿐인데 그 사진을 품고 가면 구순이 훌쩍 넘은 내 모습 보고 당신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난 아직도 당신을 만날 날만을 기다립니다.”
6ㆍ25 전쟁 중 남편을 떠나 보낸 아내의 편지 마지막 대목이다. 배우 김혜수가 6일 현충일 추념식에서 낭독한 이 편지가 이틀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다.
김씨는 이날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6ㆍ25 전사자 성복환 일병의 아내 김차희(93) 여사가 쓴 편지를 대신 낭독했다. 김 여사의 남편 성 일병은 1950년 8월 10일 학도병으로 입대해 같은 해 10월 13일 백천지구 전투 중 전사했다. 김 여사는 남편 성 일병을 향해 ‘당신을 기다리며 보낸 세월’이라는 제목의 편지를 썼다.
김 여사는 편지에서 “내게 남겨진 것은 당신의 사진 한 장뿐”이라며 “뒤돌아보면 그 가혹한 세월을 어떻게 살아왔는지”라고 회고했다. “어느날, 전쟁과 함께 학도병으로 징집된 후, 상주 상산초등학교서 잠시 머물다 군인들 인파 속에 고향을 지나면서도 부모님께 인사조차 드리지 못하고 떠나는 그 심정 어찌했을까”라며 “전장의 동료에게 전해 받은 쪽지 한 장뿐.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난 후 몇 달 만에 받은 전사 통지는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김 여사는 또 “10년을 큰 댁에 머물면서 그 많은 식구들 속에 내 설 자리는 없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시고 내가 살아 무엇할까, 죽고 싶어 식음을 끊고 지내면서도 친정 엄마 생각에 죽을 수 없었다”고 했다.
김 여사는 “당신의 흔적을 찾으려 국립묘지에 갈 때마다 회색 비석들이 군복을 입은 군인들이 쓰러져 있는 모습으로 보이는데, 어떤 이가 국립묘지에 구경하러 간다는 말에 가슴이 미어진다”며 “젊은 청춘을 바친 무덤을 보고 어찌 구경하러 간다는 말을 할 수 있을까”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끔은 원망스럽지 않느냐는 질문에 남편을 위해 한 것이 없어 원망할 수 없다고 대답한다”며 “마지막으로 소망이 있다면 당신의 유해가 발굴되어 국립묘지에 함께 묻히고 싶은 것 뿐”이라고 했다.
김 여사는 “내게 남겨진 것은 젊은 시절 당신의 증명사진 하나뿐인데 그 사진을 품고 가면 구순이 훌쩍 넘은 내 모습 보고 당신이 놀라지 않을까 걱정되지만, 난 아직도 당신을 만날 날만을 기다린다”며 편지를 마무리했다. 김혜수씨는 남편을 향한 애절한 마음을 담은 김 여사의 편지를 차분히 낭독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 일부 참석자들은 애달픈 사연에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SNS에서는 편지 내용에 마음이 아팠다는 반응과 함께 낭독자로 선 김씨가 긴 세월 남편을 가슴에 묻고 살아 온 아내의 심정을 잘 대변했다는 반응이 7일까지 이어졌다. SNS에는 “김혜수 님이 대신 말해준 김차희 어머님 심정을 잘 들었다. 울컥했다”(fi**********), “내용도 내용이지만 김혜수의 차분한 낭독, 진심이 담긴 낭독이 눈물 나게 하더라”(ah******) 등의 글이 올라왔다.
이날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나라를 지켜낸 아버지의 용기와 가족을 지켜낸 어머니의 고단함을 우리는 기억한다”며 “돌아오지 못한 아버지와 남겨진 가족의 삶을 우리는 기억한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의 애국은 바로 이 소중한 기억에서 출발한다”며 “나라를 위한 일에 헛된 죽음은 없다. 나라를 위한 희생은 공동체가 함께 책임져야 할 명예로운 일이다. 오늘의 우리는 수많은 희생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민정 기자 mjmj@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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