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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세상보기] 세탁기와 유튜브와 사랑의 힘

입력
2019.06.08 04:4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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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연구가 국가비(좌)와 결혼한 유투버 조쉬(오른쪽). TV조선 캡처
요리연구가 국가비(좌)와 결혼한 유투버 조쉬(오른쪽). TV조선 캡처

두 강대국이 무역전쟁을 벌이는 시대에도 사랑은 피어난다. 내 친구 부부가 그런 경우로, 올해 초 미국인 아내와 중국인 남편은 둘을 똑 닮은 예쁜 아이를 낳았다. 언젠가 그 부부에게 서로 문화 차이는 못 느끼냐고 물었다가 그들의 연애시절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아내 쪽의 본가에 갔을 때 일인데, 즉 그녀의 부모에게 남자친구를 처음 소개하는 날이었단다. 그들은 화기애애한 저녁식사를 함께 한 뒤 밤이 깊어 각자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갑자기 거실로 내려와 청소를 하더란다. 그러더니 세탁실에 들어가 여자친구 부모의 속옷이며 이불을 모두 빨아 버렸다는 것이다.

누구의 지시나 동의를 받은 행동이 아니었다. 설령 동의를 받았다 해도 미국인의 시선에서 그것은 퍽이나 괴상해 보였음이 틀림없다. 잠에서 깬 아버지가 딸의 남자친구를 도둑으로 오인해 총을 겨누었다니 말이다. 하지만 이 중국인 남자의 입장에서는 여자친구의 부모님을 위해 청소와 세탁을 해드린 것이 효행의 실천이자 최고의 예우였던 것이다. 온 가족이 그를 뜯어말리는 동안에도 그는 총부리 앞에서 당당하게 “괜찮아요, 먼저 주무세요”를 연발하며 싱글벙글 웃었다고 한다. 까딱하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해프닝에도 불구하고 그 부부는 트럼프와 시진핑 중 누구도 닮지 않은 예쁜 아이를 낳았으니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만일 인문학 공부에 다른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혹은 어떻게 살았는지를 관찰하려는 인류애적인 동기가 있다고 한다면, 그저 그런 일상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들조차도 인문학적 독해의 소재가 될 수 있다. 매일 다른 문화를 경험하는 사람들, 예를 들면 스페인에 사는 한국인이나 사우디아라비아에 사는 호주인 등은 각각의 문화권에서 너무 당연하기에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포착해 이야기한다. 먹고 마시는 것에서부터 사람들의 행동이나 사고방식 등 주제도 다양하다. 때로는 유튜버 개인의 편견일지라도 비슷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으면 그것은 진실에 가깝게 보인다.

일본에 살고 있거나 일본인과 결혼 또는 가족 결합으로 같이 지내는 유튜버들이 흔히 말하기를, 일본인들은 언제나 일을 한다고 한다. 늦게까지 일하고 퇴근 후에도 회사 동료들과 어울려 다니며, 여행을 가더라도 회사 동료들과 가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어떤 이는 그들이 성실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다른 이는 그들이 비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어떤 유튜버는 자신의 일본인 남자친구를 소개한다며 카메라를 비추었는데 그 남자는 방송 중에도 계속 업무전화를 받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한국에 살고 있거나 한국인과 가까이 지내는 외국인 유튜버들이 흔히 하는 이야기가 있다. 특히 한국인과 교제하고 있거나 결혼한 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데, 한국인들은 하루 종일 시시콜콜한 문자 연락을 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외국인과 교제하는 한국인 유튜버들은 상대방이 메시지를 읽고도 대답이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잘 잤니에서 시작해서 밥은 먹었니, 뭐 먹었니, 맛있었니 등등을 계속 주고받는 사람들은 전 세계에 한국인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한국인이 연락을 너무 자주할 뿐 아니라 상대방으로부터 즉각 반응이 오지 않으면 서운해한다.

자주 연락하는 습관은 아마도 한국인이 몹시 관계지향적이며 늘상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중요시하기 때문일 터이다. 누군가와 연락을 주고받을 때는 안도감이 들지만 대화의 효용을 생각한다면 좋은 문화는 아니다. 본론을 말하기에 앞서 지금 어디에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이야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본 방송에서 어느 외국인 유튜버는 한국인 남편과 자기 친구 두 사람을 앉혀 놓고 주장하기를, 연락을 한국어로 할 때는 집착하는 느낌이 아니라고 했다. 역시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손이상 문화운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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