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추념사에서 “애국 앞에선 보수와 진보 없다”
한국당 “북한 훈장 받은 사람을… 대통령 역사인식에 심각한 문제”
문재인 대통령은 6일 현충일 추념사를 통해 “기득권이나 사익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여기는 마음이 애국”이라며 “기득권에 매달린다면 보수든 진보든 진짜가 아니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극한 대립에 대한 우려가 담긴 메시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이날 문 대통령이 항일 무장독립운동가 약산 김원봉을 현충일 추념사에서 언급한 사실 등을 문제 삼아 대한민국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시도라며 강하게 반발해 김원봉을 둘러싼 공적 논란이 재점화하는 양상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동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열린 제64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애국 앞에 보수와 진보가 없다”며 “저는 보수든 진보든 모든 애국을 존경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어 “지금 우리가 누리는 독립과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노력이 함께 녹아 있다”며 “이제 사회를 보수와 진보, 이분법으로 나눌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단언했다. 문 대통령은 또 “극단에 치우치지 않고 상식의 선 안에서 애국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통합된 사회로 발전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그것이야말로 이 시대의 진정한 보훈이라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특히 항일투쟁기 역사를 언급하면서 “광복군에는 무정부주의세력 한국청년전지공작대에 이어 김원봉 선생이 이끌던 조선의용대가 편입돼 마침내 민족의 독립운동역량을 집결했다”며 “통합된 광복군 대원들의 불굴의 항쟁의지, 연합군과 함께 기른 군사적 역량은 광복 후 대한민국 국군 창설의 뿌리가 되고, 나아가 한미동맹의 토대가 됐다”고 평가했다.
문 대통령이 김원봉의 공적을 거론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인 2015년 8월 15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구 현상금 5만엔, 김원봉 현상금 8만엔”이라는 영화 ‘암살’의 대사를 언급하고 “광복 70주년을 맞아 약산 김원봉 선생에게 마음속으로나마 최고급의 독립유공자 훈장을 달아 드리고 술 한 잔을 바치고 싶다”고 적었다.
한국당은 문 대통령이 현충원 추념사에서 김원봉을 언급한 데 대해 “대통령의 역사 인식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며 즉각 반발했다. 전희경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6ㆍ25 전쟁에서 세운 공훈으로 북한의 훈장까지 받고 북의 노동상까지 지낸 김원봉이 졸지에 국군 창설의 뿌리, 한미동맹 토대의 위치에 함께 오르게 됐다”며 “귀를 의심하게 하는 추념사”라고 발끈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와 집권 세력이야말로 우리 사회 가장 극단에 치우친 세력이라 평가할 만하다”고 비난했다.
김원봉은 1919년 의열단을 조직해 일제 수탈기관 파괴와 요인암살 등 무정부주의 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다. 1942년 광복군 부사령관에 취임했으며 1944년 임시정부 국무위원 및 군무부장도 지냈다. 하지만 광복 이후 행적에 대해서 평가가 엇갈린다. 1948년 월북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등 북한 정권에서 고위직을 지낸 탓이다. 다만 1958년 김일성의 옌안파 제거 때 숙청되긴 했다.
영화 ‘암살’ 개봉을 계기로 그의 행적이 재조명됐지만, 국가보훈처 자문기구인 국민중심 보훈혁신위원회가 올해 초 김원봉을 독립유공자로 포상할 것을 권고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찬반 논쟁이 벌어지기도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원봉과 관련해 논란이 불거지자 “김원봉의 조선의용대가 국군의 뿌리라든가 한미동맹의 기초라는 식으로 받아들이는 건 논리적 비약”이라며 “(김원봉에 대한) 서훈 추서 문제 또한 국가보훈처에서 다룰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한편 이날 추념식에는 청해부대 최영함 입항 행사 도중 정박용 밧줄 사고로 숨진 고 최종근 하사의 동료와 유족들도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최 하사를 언급하며 “우리는 지난 5월 24일, 또 한 명의 장병을 떠나 보냈다. 이역만리 소말리아 아덴만에서 파병 임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마지막 순간이었다”며 “오늘 부모님과 동생, 동료들이 이 자리에 함께 하고 계신다. 유족들께 따뜻한 위로의 박수 보내달라”는 말로 추모의 뜻을 전했다. 추념식 입장 때도 최 하사 부모와 손을 잡고 한참 대화를 나눴고, 분향도 권했다. 현충일 추념식에서 대통령과 유공자 부모가 분향을 함께 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죽어서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한 6ㆍ25 참전용사 아내의 편지 낭독을 듣다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아울러 지난 5ㆍ18기념식에서 김정숙 여사가 황교안 한국당 대표와 악수를 하지 않으면서 제기됐던 ‘악수 패싱’ 논란은 이번엔 없었다. 김 여사는 황 대표와 눈을 맞추며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이동현 기자 nani@hankookilbo.com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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