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 간 ‘화웨이 갈등’이 결국 우리의 선택을 강요하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는 지난 5일 국내 정보기술(IT) 업체 초청 행사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말처럼 세계는 신뢰할 수 있는 시스템을 원한다”면서 “단기적 비용 절감은 솔깃할 수 있지만 신뢰할 수 없는 공급자를 선택하면 장기적인 리스크와 비용이 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그가 화웨이를 직접 언급하진 않았지만, 동맹국들을 향한 미국의 반(反)화웨이 전선 동참 요구에 비춰 사실상 화웨이 장비를 쓰는 국내 기업들을 겨냥한 경고라는 해석이 많다. 이날 발언은 특히 우리 정부를 향한 중국의 압박 소식이 전해진 이튿날 나온 것이어서 주목된다.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최근 미중 무역 갈등이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태 이후 한중 관계에 미칠 영향을 묻는 질문에 “미국이 바라니까 동참할 게 아니라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야 한다”며 반화웨이 전선 동참을 경고했다.
그간 우리 정부는 화웨이 이슈를 개별 기업의 경영 판단의 문제로 설명하며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하지만 수면 아래 외교 채널을 활용하던 미국의 요구는 갈수록 노골화하고 있고, 중국은 제2의 ‘사드 한파’ 가능성으로 위협하고 있다. 양대 패권국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는 우리를 향해 미중 양국이 공히 줄서기를 강요하고 있는 형국이다.
화웨이 문제는 미중 간 글로벌 패권 충돌의 한 단면이라 우리가 공세적인 입장을 취하기 어렵다. 최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는 게 그래서 중요하다. 미중 양국이 우리의 외교ㆍ안보ㆍ경제 등에 미치는 영향을 감안할 때 섣부른 결정이 낳을 후과는 사드 사태에서 이미 경험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내년도 글로벌 총생산이 4,500억달러(약 530조원) 감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그러잖아도 경제가 어려운 마당에 어느 한쪽을 일방적으로 편들며 무역전쟁의 소용돌이 한복판으로 들어가선 안 된다.
우리 정부의 결정은 어떤 상황에서도 국익에 기반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보수와 진보, 여야를 넘어서는 국론의 결집이 절실하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청와대의 정당 대표 회동에 나설 것을 촉구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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