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반도 서남부에 위치한 나라 예멘에는 내전과 테러, 난민만 있는 게 아니다. 예멘은 세계 최초로 커피를 재배하고 상용화 시킨 커피 종주국이다. 세계 2대 커피 품종 중 하나인 아라비카나 달콤한 맛으로 전 세계적 사랑을 받는 모카 커피(Mocha coffee)의 기원이 바로 예멘이다. 아라비카는 옛날 예멘 땅을 지칭하던 아라비아 펠릭스(행복한 아라비아)에서 따왔고, 모카는 예멘 커피를 수출하던 예멘의 항구 이름이다.
예멘을 비롯해 에티오피아 등 중동ㆍ아프리카 커피는 모카 항구를 통해 유럽을 거쳐 아시아, 아메리카로 퍼져 나갔다. ‘모든 커피는 모카로 통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녔다. 그러나 1960년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뒤 남북이 분단되면서 예멘의 비극은 시작됐다. 전쟁이 일상이 된 예멘에서 커피는 사라진 역사였다.
‘전쟁 말고 커피’는 미국 샌프란시스코 빈민가에서 자란 예멘 이민자 청년 목타르 알칸샬리가 예멘 커피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분투한 과정을 그린 소설 형식의 전기다. 미국의 극작가이자 소설가인 데이브 에거스가 목타르를 수년 간 인터뷰해서 썼다.
목타르는 예멘 출신이지만, 예멘 커피 자체를 몰랐다. 예멘에선 커피보다 돈이 되는 마약성 작물인 카트 재배를 더 선호해 커피는 구경조차 어려웠다. 예멘 커피의 위대함을 들은 건 미국에서였다. 당장 돈이 급했던 목타르는 2014년 무작정 예멘으로 건너가 커피 수입 사업에 뛰어든다. 하지만 예멘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부족 간 분쟁, 반군들의 테러 공격에 사람들이 쉴새 없이 죽어갔다. 그러나 목타르에게 폭탄과 기관총의 공포보다 더 절망스러웠던 것은 삶의 모든 의욕을 잃은 듯한 예멘의 커피 농부들이었다. 그들에게 섣불리 희망을 얘기하는 건 더 큰 죄였다.
목타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예멘만의 명품 커피로 예멘 사람들의 가치와 자긍심을 살려내겠다는 원대한 목표를 세웠다. 그는 ‘농민이 먼저다’라는 모토 아래 커피 원두의 가격부터 상향 조정했다. 커피 생산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뒷받침돼야 양질의 원두가 생산된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판단은 적중했다. 커피 산업은 단순히 카페인을 소비하는데 그치지 않고 취향을 극대화 하는 방식으로 진화해 갔다. 사람들은 커피의 원산지는 물론 생산 농장, 농부 이름까지 살피며 세상에 하나뿐인 특별한 커피를 찾기 시작했다. 최상급의 품질을 자랑하는 목타르의 커피는 입소문을 타며 인기가 치솟았다. 커피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커피 업체인 블루보틀에서 사상 최고의 평점을 받기도 했다.
전쟁 말고 커피
데이브 에거스 지음ㆍ강동혁 옮김
문학동네 발행ㆍ432쪽ㆍ1만5,000원
책은 한 청년의 성공담에만 집중하지 않는다. 수십 년 간 이어진 전쟁의 참상 속에 피폐해진 예멘 사람들의 절망적인 삶도 조명하며 인간의 존엄에 대해서도 묻는다. 목타르는 커피를 마신다는 것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음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가 마시는 모카 커피 한잔에는 예멘인들의 회한과 눈물, 삶에 대한 열정과 의지가 녹아 있다.
강윤주 기자 kka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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