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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의도에선] 버티는 손학규, 다당제 안착 위한 헌신인가 아집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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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의도에선] 버티는 손학규, 다당제 안착 위한 헌신인가 아집인가

입력
2019.06.07 04:4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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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학규(왼쪽) 바른미래당 대표가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오신환 원내대표의 발언을 굳은 표정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손학규(왼쪽) 바른미래당 대표가 5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오신환 원내대표의 발언을 굳은 표정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 여러분께 민망한 마음을 금할 수가 없어요. 아이고, 나보고 사람들이 잘 참는다고 하는데 내 속은 어떻겠어요.”

지난 5일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나온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는 기자들에게 씁쓸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이날 회의는, 최근 여느 회의와 마찬가지로 손 대표를 위시하는 당권파와 손 대표 퇴진을 요구하고 있는 비당권파 간 설전으로 시끄러웠다. 바른정당계 권은희 최고위원은 손 대표 측근인 이찬열 의원의 ‘양아치’ 발언을 두고 그의 징계를 요구했고, 손 대표와 가까운 문병호 최고위원은 유승민 전 대표의 ‘손 대표 체제가 당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는 발언을 문제 삼아 “유 전 대표야말로 정체성을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양측의 언쟁이 멈출 줄 모르자 손 대표는 “기자 여러분께 민망하다”며 황급히 회의를 비공개로 돌렸다.

바른미래당의 지리멸렬한 계파 갈등은 4ㆍ3 보궐선거 직후부터 두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득표율 3.57%의 처참한 성적표를 통해 “현 대표 체제로는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린 바른정당계는 손 대표 퇴진을 촉구했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 정국을 거치면서는 안철수계 의원들도 가세했다. ‘후배들의 미래를 위해’ 손 대표가 창업주인 안 전 의원과 유 전 대표에게 지휘봉을 넘겨야 한다는 게 잠시 한 배를 탄 이들의 요구다.

그러나 손 대표의 ‘퇴진 거부’ 뜻은 완강하다. “천길 낭떠러지 앞에서 죽기를 각오한다”고까지 했다. 그럴수록 후배들의 입은 날로 독해졌다. “찌질하다”(이언주 의원), “독단과 독선으로 혼자 당을 운영한다”(오신환 원내대표), “나이가 들면 정신이 퇴락한다”(하태경 최고위원)는 비판에 “험한 꼴 다 당하고 있다. 빨리 나와서 새집을 짓자”(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는 훈수도 들었다. 타협책으로 제시한 혁신위는 손 대표의 백방 노력에도 위원장을 맡겠단 인사를 찾지 못하는 실정이다.

4선 의원, 경기지사, 보건복지부 장관에 유력 대선주자였던 그가 면전에서 갖가지 수모를 겪으며 왜, 이렇게까지 버티나. 지난해 9월 당 대표 수락연설에서 그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의 심정으로 무능과 독선의 제왕적 대통령, 갑질 양당체제를 무너뜨리는 데 저를 바치겠다”고 했다. 바른미래당이 다른 당과 합쳐지거나 흡수되는 것을 막고, 다당제를 안착시키는 게 정치인생 마지막 목표라고 말해왔다.

그럼에도 진의를 의심하는 눈초리는 여전하다. ‘노욕’이란 말도 나온다. 그러나 70세를 넘긴 그가 대통령 꿈을 접은 지는 오래라고 한다. 다만 “권력구조 개헌이 되면 총리를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갖고 있을 것”이란 게 측근들의 전언이다.

마주치면 으르렁대지만, 당권파와 비당권파 모두 손 대표가 여야 누구와도 대화가 가능한 현 정치권의 자산이란 데 이견이 없다. 제3정당 원외 당대표의 한계에도 몸을 던져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의 물꼬를 텄다. 미세먼지 문제를 풀 적임자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처음 추천해 국가기후환경회의 출범을 견인한 것도 손 대표다. 양 측이 타협을 통해 갈등을 매듭 짓고, 손 대표의 명예로운 퇴진 길을 열어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공감을 얻는 이유다.

본인의 표현대로 손 대표는 지금 죽음의 길에 서있다. 그는 퇴진 요구가 한참 거세지던 지난 4월 “추석까지 당 지지율이 10%가 안되면 사퇴하겠다”고 공언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바른미래당은 10일 의원 연찬회를 한다. 또 한 번의 기회가 그의 앞에 놓였다.

이서희 기자 sh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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