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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핀란드化’ 재조명

입력
2019.06.06 18:00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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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하고 세련된 인테리어와 가구로 선망의 대상이며, 한때 전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했던 노키아로 유명한 하이테크의 나라 핀란드. 하지만 핀란드는 1948년 소련과 우호협력원조 조약을 체결한 후 1991년 소련이 붕괴할 때까지 철저히 소련 눈치를 보는 나라였다. 1974년에는 예정된 대통령선거를 미루기도 했고, 소련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의 소설을 출간하지 못할 정도로 언론ㆍ출판도 제약을 받았다.

□ 냉전 시대 서구에서는 이런 핀란드를 냉소적으로 봤다. 서독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1970년대 ‘동방정책’을 펼치자, 보수 반공 정치가들이 브란트의 정책을 ‘핀란드화’ (Finlandization)라고 비꼬았다. 1979년 뉴욕타임스는 핀란드화를 “전체주의적 초강대국의 군사적ㆍ정치적 무자비함에 위압돼 그 옆에 있는 작고 약한 국가가 체면을 버리고 당혹스러울 정도로 자주적 자유를 양보하는 개탄스러운 상황”이라고 정의했을 정도다. 핀란드인들이 ‘핀란드화’라는 단어를 불쾌하게 여기는 이유다.

□ ‘총 균 쇠‘의 저자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최신작 ‘대변동’에서 핀란드화를 독립과 국익을 지키기 위한 냉철한 선택으로 높이 평가한다. 핀란드는 1939~44년 사이 두 차례 소련 침공에 맞서다 전 인구의 2.5%인 10만명이 사망하는 희생을 치렀다. 당시 소국 핀란드를 돕는 동맹은 하나도 없었다. 이후 독립을 유지하는 유일한 방법은 경제적 독립과 표현의 자유를 조금 희생하더라도 소련의 신뢰를 얻는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게 됐다. 동시에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핵심가치는 지키며 경제발전에 매진하며, 소련 위성국으로 전락한 나라들의 운명을 피할 수 있었다.

□ 핀란드화는 현실에 순응하는 도덕적 마비가 아니라,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적극적 변화인 동시에 정체성 보존 노력이었다. 다이아몬드는 핀란드가 소련의 위협을 극복하고 부국이 된 요인으로 해결할 문제의 명확한 규정, 확고한 국가 정체성, 대응 실패에 대한 관대한 용인과 다양한 해결책 시도, 유연성 등을 꼽았다. 최근 미ㆍ중의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사이에 낀 우리나라는 어쩌면 향후 수십년의 국운이 걸린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첫걸음은 냉정한 자기 능력과 처지에 대한 분석과 평가다. 또 국익을 위해 당파적ㆍ이념적 차이는 잠시 덮어두는 지혜도 요구된다. 우리나라에 지금 이런 자질을 갖춘 리더가 있는가.

정영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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