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계엄령 자체가 위헌”
1972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포한 ‘유신헌법’과 계엄령을 공개적으로 비난해 옥살이를 한 고인(故人)이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재판부는 최근 대법원 판례에 따라 유신 당시 선포된 계엄령 자체를 무효로 판단했다.
서울북부지법 형사항소4부(부장 강혁성)는 1972년 계엄법 위반 혐의로 기소돼 징역 3월형을 받은 이모씨의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고 6일 밝혔다. 사건 당시 49세였던 이씨는 이미 사망했다.
이씨는 유신헌법 선포와 함께 전국에 비상계엄령이 내려진 다음날인 1972년 10월 18일 서울 성북구 일대 상점가에서 “박정희는 집권을 연장하려고 계엄을 선포하고 개헌을 하려고 한다. 죽여야 한다”고 수 차례 박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발언을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47년이 지난 올해 3월 해당 판결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다.
재판부는 “당시 계엄령이 헌법과 법률에서 정한 요건을 갖추지 못한 채 발령됐고, 내용도 영장주의와 죄형 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되며, 표현의 자유ㆍ학문의 자유ㆍ대학의 자율성 등 헌법상 보장된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었다”면서 “위헌ㆍ위법해 무효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계엄 포고가 처음부터 위헌이고 무효인 이상, 이를 위반했음을 전제로 한 이씨의 공소사실 또한 범죄가 되지 않아 무죄를 선고해야 함에도 원심은 유죄를 선고한 잘못이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지난해 12월 21일 계엄령을 위반하고 불법집회를 한 혐의로 기소돼 1973년 징역 8월을 선고 받은 허모씨의 재심 상고심에서 “계엄 포고는 대통령 특별 선언을 통해 기존의 헌정질서를 중단시키고 유신체제로 이행하고자 그에 대한 저항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한 것”이라며 무효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허씨의 계엄법 위반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현주 기자 memory@hankookilbo.com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