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동 씨는 그릇이 정말 큰 사람이에요. 보통이 아니죠.”
최근 tvN ‘대탈출2’를 연출한 정종연 PD와의 인터뷰에서 인상 깊게 남았던 이야기였다. 당시 ‘대탈출2’의 좀비 에피소드 비하인드를 밝히던 정 PD는 예기치 못한 중도 탈락에도 끝까지 자신의 역할을 열정적으로 소화해 낸 강호동의 이야기를 꺼내며 프로그램에 임하는 그의 태도에 대한 존경심을 표했다.
1989년 20살의 나이로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하며 씨름선수로 활약했던 강호동은 1992년 씨름계에서 공식 은퇴한 뒤 이듬해인 1993년 MBC 특채 개그맨으로 입사, ‘코미디 동서남북’을 통해 본격적인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어느덧 데뷔 27년차를 맞이한 그는 여전히 예능계에서 손꼽히는 ‘톱 MC’로 활약 중이다.
과거 ‘강호동의 천생연분’ ‘일요일이 좋다-X맨’을 비롯해 ‘스타킹’ ‘황금어장-무릎팍도사’ 등 걸출한 예능에서 MC로 활약하며 자리를 굳혔던 그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첫 번째 이유는 ‘장르를 불문한 도전의식’일 것이다.
실제로 강호동은 데뷔 이후 90년대를 풍미했던 개그 프로그램을 비롯해 가요 프로그램, 리얼 버라이어티, 토크쇼, 요리 프로그램 등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활약해왔다.
특히 2010년 이후에는 국내 예능 시장의 장르가 비약적으로 확대됨에 따라 강호동 역시 더욱 다양한 장르로의 도전을 알렸다. 웹예능으로 시작해 정규 편성에 성공하며 현재 시즌7까지 이어져오고 있는 tvN ‘신서유기’를 비롯해 JTBC ‘아는 형님’ ‘한끼줍쇼’, 올리브 ‘섬총사’, tvN ‘대탈출’ 등 출연 프로그램들의 면면을 언뜻 살펴봐도 그의 끊임없는 도전기를 엿볼 수 있다.
이는 많은 방송인들이 소위 ‘톱’급 MC로 자리 잡고 난 뒤 개인적으로 선호하거나, 자신 있는 포맷의 프로그램에 출연하려는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다. 덕분에 강호동은 ‘특정 예능 장르에 어울리는’ MC가 아닌 ‘어떤 예능에 투입해도 믿고 볼 수 있는’ MC가 됐다. 매일 새로운 예능인들이 탄생하는 ‘예능 정글’에서 이것이 무엇보다 강력한 자산인 것은 두말 할 나위 없다.
강호동의 특별함은 또 있다. 프로그램 내에서 ‘1인자’ 대신 ‘공생’을 택했다는 것이다.
사실 과거 강호동은 쩌렁쩌렁한 진행 스타일, 게스트를 압도하는 에너지와 포스 등으로 ‘군림하는 MC’적 성향이 다소 강하다고 평가 받아왔다. 특히 토크쇼였던 ‘야심만만’, ‘스타킹’이나 ‘무릎팍 도사’ 등에서 특히 해당 진행 특성이 강하게 묻어나다 보니 그의 진행 스타일을 두고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갈렸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강호동은 어느 순간 자신의 진행 스타일에 변주를 시작하며 진화를 알렸다. ‘게스트 위에 있는 MC’ 대신 ‘공생하는 MC’로 스며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전까지 프로그램 내에서 MC라는 타이틀에 맞는 역할을 수행해 왔던 강호동은 ‘신서유기’ ‘아는형님’ ‘대탈출’ ‘한끼줍쇼’ 등을 통해 MC보다 팀의 일원으로서의 역할에 집중했다. ‘군림했던 MC’라는 과거의 이미지는 우스갯소리로 소비되고, 멤버들은 애교를 부리고 허당미를 보이기도 하는 강호동에게 면박을 주기도 한다. 완전한 수평 관계로의 변화다. 그러면서도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는 것에도 소홀하지 않는 것은 내공이었다. “멤버들이 진짜 무서울 때 부모님 찾듯이 찾는 사람은 결국 강호동이다. 그런 존재감은 나이가 많다고 되는 게 절대 아니다”라던 ‘대탈출’ PD의 말에서도 ‘멤버로서의 역할’과 ‘MC로서의 역할’을 똑똑하게 해내고 있는 강호동의 연륜이 느껴졌다.
강호동은 지난 31일 첫 방송을 시작한 ‘강식당2’에서도 반가운 활약을 선보였다. 또 한 번 식당을 운영해야 한다는 이야기에 걱정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끝내 자신이 맡은 요리를 완벽하게 해내고, 혼돈의 주방 속에서 “배려와 존중”을 외치는 귀여운 매력으로 웃음까지 하드캐리한 것이다. 방송의 8할은 담당했대도 과언이 아닌 그의 묵직한 존재감은 동생들의 활약에도 결국은 ‘강식당’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다시 한 번 절감하게 했다.
최근 tvN ‘300 엑스투’, TV조선 ‘부라더 시스터’의 진행까지 맡으며 ‘열일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강호동. 끊임없는 도전 정신과 ‘MC’라는 위치를 고집하지 않은 영리한 역할 변주로 클래스의 위엄을 증명하고 있는 그의 ‘롱런’은 꽤 오랜 시간 계속 될 듯하다.
홍혜민 기자 hh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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