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이슈 “기업 문제” 입장 유보… “미국 편 서되 중국 달랠 묘수 찾아야”
양대 패권국가인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점차 심화하면서 미중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해왔던 정부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일단 우리 정부는 섣불리 어느 한쪽을 편들지 않겠다는 기조이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해야 하는 순간이 임박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는 미국이 문제 삼았던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 이슈를 개별 기업이 결정할 문제라며 유보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지난달 23일 미측이 반(反)화웨이 캠페인에 지지해줄 것을 요청했는지에 대한 질문에 “미국의 입장을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협의 내용에 대해서는 말씀드릴 수 없다”고 답변을 미뤘다.
문제는 화웨이 이슈에 대한 전략적인 침묵에도 불구하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ㆍ사드) 배치 때와 같이 미국의 요구는 갈수록 노골화되고 중국의 반감은 커지는 샌드위치 신세가 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당장 5일만 해도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주한미국대사관과 한국인터넷기업협회가 주최한 ‘클라우드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국내 기업에 화웨이와의 협력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를 던지는 등 압박을 가하기도 했다. 반면 중국의 호응이나 양해를 이끌어내지는 못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당국자는 지난달 28일 한국 외교부 출입기자들을 만나 ‘미중 무역 갈등은 양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미국이 바라니까 동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정부와 기업이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한다”며 뼈 있는 답변을 남겼다.
전문가들은 미국 상무부가 4일(현지시간) 희토류 등 주요 광물(critical minerals) 문제를 안보 문제로 규정하고 한국 등과 전략적으로 공조하겠다는 보고서를 내놓은 건 한국을 향해 미중 가운데 누구 편에 설지 결정하라는 노골적인 압박과 다름 없다고 본다. 특히 미측에서 희토류 등을 안보 문제로 규정한 이상, 이제는 개별 기업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수준의 판단과 결정이 필요해졌다. 조동준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한국으로선 피하고 싶었던 상황”이라며 “이제는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해야 하는 ‘진실의 순간’이 온 것”이라고 평가했다.
대외적으로는 입장을 내놓지 않았지만, 정부도 해법 마련에 고심 중이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30일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에서 “미중관계의 전개는 무역분쟁이나 화웨이 문제를 뛰어넘는 광범한 영향을 우리에게 줄 것”이라며 “외교부에 미중관계를 본격적으로 담당하는 전담조직을 두는 문제를 검토해달라”고 주문했다. 외교부 당국자는 외교부 전담조직 설치와 관련해 “구체적인 방안 마련 위해 회의 중”이라고만 답했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아직 미중 모두 구체적으로 요구한 건 아니라 선제적으로 입장을 밝힐 필요는 없지만, 사안별로 대응방안을 강구해놓아야 한다”며 “결국 동맹인 미국 편에 설 수 밖에 없겠지만 중국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내년까지 미중 무역갈등을 끌고 가면 경제 문제가 미국 대선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올해 연말까지는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라면서도 “최대한 신중하게 접근해 미국 편에 서되 중국을 달랠 수 있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안아람 기자 oneshot@hankookilbo.com
김현빈 기자 hbkim@hankookilbo.com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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