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사 양정철, 박원순ㆍ이재명ㆍ김경수 등 잇달아 만나… 후보군 다자경쟁 구도 부각
내년 총선을 1년여 앞두고 더불어민주당 차기 대선 주자들이 급부상하며 때이른 다자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스타 정치인들을 총선 선거운동의 기수로 앞세워 흥행 바람을 일으키겠다는 선거전략으로 풀이된다.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원톱으로 독주하는 야권에 비해 여권에는 “차기 대선 주자가 차고 넘친다”는 말까지는 나올 정도로 후보군이 두텁다. 대선 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여권 1위를 지키는 이낙연 국무총리, 본인의 고사에도 ‘흥행카드’ 역할을 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 최근 서울 종로 출마 의사를 우회적으로 밝힌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대표적인 예다. 여기에 김경수ㆍ이재명ㆍ박원순 등 여권의 간판 광역단체장과 최근 장관 임기를 마치고 당으로 돌아와 대구ㆍ영남(TK)의 여권 교두보 역할을 하는 김부겸 의원 역시 잠룡으로 분류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3년이나 남은 상황에서 차기 대선 주자가 공공연히 부각되는 것은 조금 이례적이다. 대선보다는 내년 총선을 겨냥한 선거 전략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다양한 지지층을 가진 대선 주자들이 역동적으로 움직일수록 유권자들의 관심이 여당에 집중될 것”이라며 “스타 정치인들을 총동원해 총선을 치르는 일종의 벌떼 전략”이라고 했다.
민주당 총선 책사 역할을 자임하는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최근 박원순, 이재명 지사와 공개 회동한 데 이어 다음 주 김경수 경남지사, 오거돈 부산시장 등과 만나는 것도 대선 주자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5일 드루킹 댓글조작 사건에 연루돼 구속됐다가 보석으로 풀려난 김경수 경남지사를 만나 힘을 실어준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대선 주자들도 적극 동조하는 분위기다. 이재명 지사는 4일 페이스북에 “문재인정부와 민주당의 성공, 민주개혁 세력의 대동단결을 위해 힘을 합쳐달라”는 글을 남기며 자신의 지지층과 친문 진영의 단결을 호소했다. 한동안 시정에 집중했던 박원순 시장도 이날 한 라디오에 출연, 양 원장과의 최근 회동을 비롯한 정치 현안에 대해 거침 없는 입장을 표명했다.
물론 대권 주자들의 조기 경쟁은 총선 승리를 넘어 대선 고지를 염두에 둔 측면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난 2002년 새천년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김근태, 이인제, 정동영, 한화갑 등 유력 후보들을 제치고 1위를 하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노무현 신드롬’을 일으켰다. 1996년 신한국당 경선 때는 이회창 전 총재가 김덕룡, 이홍구, 최병렬 등 이른바 ‘9룡’으로 불리는 경쟁자를 꺾으며 대세론을 형성했다. 민주당 관계자는 “9룡과의 경쟁이 있었기에 이회창 전 총재가 돋보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에 야당도 민주당의 다자구도 형성에 경계심을 보이고 나섰다. 한국당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원의 김세연 원장은 양 원장의 박원순ㆍ이재명 만남을 두고 “일종의 궁중(宮中) 정치 틀에서 다음 대선 구도를 만들어내는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다만 지나치게 차기 경쟁이 조기에 달궈지면 레임덕 시기가 빨라질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는 않다.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차기 권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 청와대와 집권여당의 국정 장악력이 낮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지용 기자 cdragon2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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