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국립현대미술관(국현) 과천관에서 열린 화가 31명의 전시는 국내 미술사에서 주요 기점이 된다. 서양의 모노크롬, 일본의 모노하에 빗대 불렸던 한국의 ‘단색화’가 그 자체로 고유명사화된 최대 규모 전시였기 때문이다. 절제된 색, 넓은 여백, 반복된 작업, 독특한 물성을 특징으로 하는 단색화는 이후 ‘Dansaekhwa’로 불리며 세계 무대에서 독자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규모 단색화전이 열리면서 인기는 절정을 내달렸고, 국ㆍ내외 미술 경매시장을 크게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올 들어 단색화 거장을 조명하는 대형 전시들이 다시 잇따르고 있다. 국현은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에 맞춰 지난달 초부터 이탈리아 베니스 포르투니 미술관에서 고 윤형근(1928~2007) 화백의 개인전(11월 24일까지)을 열고 있다. 국현 서울관에선 박서보 화백의 개인전(9월 1일까지)이 진행 중이다. 국제갤러리는 부산에서 하종현 화백의 신ㆍ근작을, 서울옥션은 이우환 화백의 회화부터 도자화, 테라코타 등을 전시한다. 이처럼 국립 미술관을 비롯한 대형 갤러리와 경매사 등이 비슷한 시기 일제히 단색화 재조명에 뛰어든 이유는 뭘까.
단색화 1세대를 회고하고 단색화 정체성을 명확히 할 시점이 됐다는 공감대가 주요 이유로 꼽힌다. 1970년대 서양의 모노크롬 열풍에 영향을 받아 단색화에 뛰어든 주역들이 다수 작고하거나 80대를 넘어선 점도 한몫 한다. 단색화풍 역사는 짧지 않지만 단색화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가 여전히 부실하다는 평가가 많다. 단색화 개념을 처음 정립한 윤진섭 미술평론가는 “현대미술의 주류가 된 매체, 영상 장르와 달리 근대 미술의 주요 장르 중인 단색화는 아카이빙, 연구가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윤 평론가는 “단색화 기수인 1세대 작가들이 고령인 탓에 작고 전에 회고와 연구를 활발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시로 이어졌을 것”이라고도 분석했다.
지난해부터 해외 미술계의 단색화에 대한 주목도가 상당히 높아진 영향도 있다. 지난해 11월엔 중국 최대 사립미술관인 바오룽미술관에서 ‘한국의 추상미술’이란 제목으로 김환기, 박서보, 정상화, 하종현, 이우환 등 단색화가 7명의 작품이 내걸려 4개월 만에 관객 4만명을 모았다. 프랑스 퐁피두 메츠센터에서는 지난 2월부터 이우환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미국 크랜브룩 현대미술관에선 21일부터 박서보, 권영우, 윤형근, 하종현 작가가 참여하는 기획전이 예정됐고, 중국 쑹 현대미술관에서 7월 열리는 그룹전에서도 김창열, 하종현의 작품이 출품된다. 국제갤러리 관계자는 “하종현 화백 개인전도 외국인 관람객이나 컬렉터가 집중되는 아트부산 페어에 맞춰 4년 만에 열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미술계 큰손들의 단색화 관심은 반대로 크게 잦아들었다는 점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2015년 국내 경매시장 거래 액수를 두 배로 키웠던 단색화의 거래 물량, 작품 값이 예전 같지 않다.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에 따르면 2015년 한국 경매사가 진행한 국내ㆍ외 경매에서 158억원에 달하던 단색화가 정상화의 낙찰총액은 지난해 24억원대로, 110억원대에 달하던 박서보의 낙찰 총액은 48억원대로 줄었다. 한 국내 갤러리 관계자는 “단색화 중심 동력은 국내 컬렉터들에게 있지만 인기가 주춤하니 갤러리나 경매사들 차원에선 관심 환기가 필요한 시기일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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