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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무대 그 소품] 뮤지컬 ‘신과함께’의 리어카, 철거촌 삶을 대변 ‘주연급 역할’

입력
2019.06.06 04:4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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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연 소품을 눈 여겨 본 적 있나요? ‘공연 무대에서 쓰이는 작은 도구’를 뜻하지만, 그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소품으로 공연을 읽어 보는 이야기가 격주 목요일 <한국일보>에 찾아 옵니다.

서울예술단 '신과 함께: 이승편'에서 리어카는 주인공의 생계수단인 동시에 인물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주요 소품이다. 성주신(고창석)은 리어카를 끌며 할아버지와 손자를 돕는다. 서울예술단 제공
서울예술단 '신과 함께: 이승편'에서 리어카는 주인공의 생계수단인 동시에 인물들 간의 관계를 보여주는 주요 소품이다. 성주신(고창석)은 리어카를 끌며 할아버지와 손자를 돕는다. 서울예술단 제공

지난해 개봉한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은 고물을 주워 근근이 살아가는 노인 허춘삼과 그의 손자, 이들을 묵묵히 도와주는 성주신이 이야기를 이끈다. 이들의 고달프고 위태로운 삶은 철거촌이라는 공간을 통해 실감나게 드러난다. 영화는 철거촌을 컴퓨터그래픽(CG)으로 구현했다. 같은 이야기가 무대 위로 올라가면 어떻게 묘사될까. 무대에선 CG 대신 소품이라는 ‘약방의 감초’(조윤형 소품감독)를 활용한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동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서울예술단의 신작 뮤지컬 ‘신과 함께: 이승편’에서는 리어카가 극의 정서를 돋우는 역할을 맡는다.

리어카는 영화에서도 등장하나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리어카를 주요 소품으로 활용하기로 연출가와 무대감독, 소품감독이 뮤지컬 제작 초반부터 의견을 모았다. 뮤지컬에서 리어카는 김천규 노인과 손자 동현의 생계수단이다. 리어카는 공연 중 절반 이상의 장면에 등장한다. 주연배우 못지않게 주요한 역할을 담당한 셈이다. 리어카는 인물들의 관계를 보여주고, 장면의 이해를 돕는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넘버 ‘고물을 주워라 재빨리 주워’), 성주신이 할아버지를 리어카에 태우고 끌어가는 장면(넘버 ‘하늘 아래 한울동’)에서는 웃음을 빚어낸다. 김태형 연출가는 “웹툰에서는 ‘낚시꾼에게 낚싯대를 뺏으면 어떻게 낚시를 하겠냐’며 용역꾼들이 할아버지의 리어카를 뺏으려고 할 정도로 중요한 생계수단으로 묘사돼 있다”고 말했다.

주호민 작가의 원작 웹툰 '신과 함께'(위 그림)에서는 리어카가 주요 생계수단으로 부각됐지만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에서는 리어카 대신 철거촌이라는 배경이 더 주요하게 쓰인다.
주호민 작가의 원작 웹툰 '신과 함께'(위 그림)에서는 리어카가 주요 생계수단으로 부각됐지만 영화 '신과 함께: 인과 연'에서는 리어카 대신 철거촌이라는 배경이 더 주요하게 쓰인다.

소품 리어카는 실제 리어카와 비슷한 모양으로 제작됐다. 조윤형 소품감독은 “어떤 질감의 나무를 쓸지, 오래 사용한 느낌이 나도록 어떻게 작화할지 등을 신경 써서 만들었다”고 밝혔다. 1998년 무렵부터 소품디자인을 시작한 조 감독은 공연계에서 디테일을 잘 살리기로 유명하다. 뮤지컬 ‘명성황후’와 ‘마리 앙투아네트’, 연극 ‘오이디푸스’ 등의 소품이 그를 거쳤다.

‘신과 함께: 이승편’에서 잘 드러나지 않지만 세심하게 표현된, 소품의 디테일을 눈 여겨 보면 극의 재미가 배가된다. 공연에는 리어카 두 대가 등장해 무대를 가로지르는 등 시각적 효과를 줄 예정이다. “무대 2층에서 사용하는 리어카는 실제 크기의 80%로 축소했어요. 경사진 무대에서 더 안전하고 배우들이 연기하기에 용이할 것이라는 판단에서요. 손잡이에도 사용하면서 아프지 않게 끈을 따로 덧댔고요.”

실제 리어카와 비슷한 모양으로 제작된 소품 리어카. 김태형 연출가는 "대형 뮤지컬에서 리어카라는 소품이 무대를 가로지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어서 비주얼적으로나 의미적으로 신선하다는 느낌을 거꾸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예술단 제공
실제 리어카와 비슷한 모양으로 제작된 소품 리어카. 김태형 연출가는 "대형 뮤지컬에서 리어카라는 소품이 무대를 가로지르는 게 흔한 일은 아니어서 비주얼적으로나 의미적으로 신선하다는 느낌을 거꾸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예술단 제공

‘신과 함께: 이승편’에 등장하는 소품은 모두 70여가지. 공연이 끝날 때까지 여러 번 사용해야 하는 무대 소품에는 소소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무대 위 성주단지(성주신의 혼이 담겨 있는 곳이다)는 스티로폼으로 만들어진다. 미리 조각 낸 스티로폼에 자석을 붙여 성주단지가 깨지는 장면을 극적으로 보여준다. “알고 나면 ‘별 거 아니네’ 할 수 있지만, 아주 사소한 소품 하나를 만들기까지 생각하는 과정이 오래 걸리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슈퍼에 다녀왔다’는 대사를 하면서 빈손인 것과 빈 바구니를 든 것, 바구니 안에 야채가 들어 있는 건 각기 다르게 관객들의 상상력에 큰 영향을 주거든요. 소품은 그래서 약방의 감초예요.”(조윤형 소품감독)

‘신과 함께: 이승편’은 21~29일 서울 역삼동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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