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 3위, U-17 우승했던 해 등록선수 1450명으로 이룬 기적
20대 후반 전성기 선수들, 4년 뒤에도 뛸 가능성 적어 전력
9년 전 여자축구의 불모지 한국에 신드롬을 일으켰던 17세ㆍ20세 이하 대표 선수들이 다시 한 번 당찬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엔 성인대표팀 최고의 무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프랑스 여자 월드컵이다. ‘황금세대’가 모두 나서는 사실상의 마지막 대회인 만큼 기대감도 크다.
2010년은 여자축구가 한국 축구사를 새로 쓴 기념비적인 한 해였다. 첫 주자는 19세의 에이스 지소연(28ㆍ첼시레이디스)이 이끈 20세 이하(U-20) 국가대표팀이었다. 대표팀은 8월 독일에서 열린 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남자축구도 해내지 못한 FIFA 주관 대회 3위에 오르는 기적을 썼다. 등록 선수가 1,450명이라는, 턱 없이 부족한 자원과 환경 속에서 달성한 성적이었다.
2승 1패로 조별리그를 돌파한 대표팀은 8강에서 멕시코를 격파하고 4강에서 독일을 만나 1-5로 패했다. 하지만 ‘강호’ 콜롬비아와의 3ㆍ4위전에서 지소연의 천금 같은 결승골로 1-0으로 승리하며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다. 금의환향한 U-20 대표팀은 인천공항에서 수많은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전국민적인 관심이 여자 축구에 쏠린 건 처음이었다.
특히 조별리그 첫 경기 스위스전부터 해트트릭을 기록한 지소연은 최고의 스타로 떠올랐다. 대표팀이 대회에서 넣은 13골 중 8골을 혼자 몰아넣은 그는 실버슈(득점 2위)와 실버볼(최우수선수 2위)을 차지하며 여자축구의 ‘아이콘’으로 자리잡았다. 이민아(28ㆍ고베아이낙)와 강유미(28ㆍ화천KSPO), 임선주(29ㆍ현대제철), 골키퍼 강가애(29ㆍ구미스포츠토토) 등이 활약했던 대표팀은 FIFA가 수여한 대회 페어플레이상까지 거머쥐며 영광을 더했다.
한 달 뒤 세 살 어린 동생들이 더 큰 사고를 쳤다. 9월 트리니다드토바고에서 열린 U-17 여자월드컵에서 한국 축구 역사상 최초로 FIFA 주관 대회 우승을 거머쥔 것이다. 결승전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투 끝에 라이벌 일본을 제압한 것이라 기쁨은 두 배였다.
당시 U-17 대표팀의 간판 스타는 여민지(26ㆍ수원도시공사)였다. 여민지는 대회 전 “U-20 언니들이 세계 무대에서 그렇게 잘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우리도 그 이상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다”고 당찬 포부를 드러낸 바 있다. 여민지는 그 약속을 지키듯 8골 3도움으로 우승을 이끌며 골든슈(득점왕)와 골든볼(최우수선수)을 차지하며 ‘트리플 크라운’의 영예를 안았다. 특히 나이지리아와의 8강전에서는 4골을 넣는 활약으로 6-5 극적인 승리를 견인했다. 지소연과 함께 한국 여자축구를 이끌 쌍두마차가 탄생한 순간이었다.
일본과의 마지막 승부차기를 넣었던 충남인터넷고의 장슬기(25ㆍ현대제철)는 당시 “솔직히 너무 부담스러웠지만 이 골만 넣으면 이길 수 있다는 생각에 자신 있게 찼다”는 소감을 전했다. 이금민(25ㆍ경주한수원)과 이소담(25ㆍ현대제철), 신담영(26ㆍ현대제철)도 제 몫을 하며 ‘황금세대’의 탄생을 알렸다.
"엄마가 해 주는 밥이 가장 먹고 싶다"던 앳된 얼굴의 10대 선수들은 9년 뒤 든든한 대표팀 선수로 어엿하게 성장했다. 잉글랜드 여자슈퍼리그(WSL)부터 한국의 여자실업축구 WK리그를 누비며 활약을 이어왔다. 이번 프랑스 월드컵에 출전하는 23명 중 9년 전 U-17, U-20 월드컵에 출전했던 선수는 모두 13명이다. 선수로서 전성기라는 20대 후반에 접어든 만큼 4년 뒤 월드컵에 모두 나선다고 장담할 수 없다. 사실상 이번 대회가 황금세대가 한 데 뭉쳐 다시 한 번 기적을 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승엽 기자 sy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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