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지현 폴로셔츠 주세요”
30대 직장인 조은희씨는 최근 서울 시내 한 백화점의 스포츠∙아웃도어 매장에서 일명 ‘폴로셔츠’로 불리는 ‘피케셔츠’를 구입했다. 테니스나 골프 등 스포츠 종목에서 선수들이 입는 셔츠로, 목 부위에 칼라가 붙어 있는 게 특징이다. 김씨가 피케셔츠를 구입한 이유는 퇴근 시간 이후 취미생활을 즐기기 위해서다. 김씨는 “전동 휠이나 킥보드를 타는 동호회에 가입했는데 정장 차림은 불편하더라”며 피케셔츠를 선택했다.
주 52시간 근무제가 되면서 김씨처럼 ‘워라밸’(Wark+Balance)을 즐기는 ‘하비슈머(Hobby+Consumer) 소비자의 합성어)’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은 공예나 악기 연주 및 걷기나 타기 등 주로 업무와 무관한 취미생활을 즐긴다. 그래서 도심 속 백화점 문화센터에 발길을 돌리는가 하면 ‘프립’ 같은 여가생활 동호회 앱이 인기다.
이들을 겨냥해 발 빠르게 움직인 건 패션업계다. 그 중에서도 아웃도어 브랜드들이 노선을 선회하며 일제히 ‘폴로셔츠’라는 이름으로 올 여름 히트상품으로 내놨다. 등산이나 트래킹, 낚시 등 활동적인 아웃도어 룩을 기본으로 사업을 펼쳤다면, 올 여름은 피케셔츠 한 장에 사활을 건 모양새다.
가장 공격적인 마케팅을 펴는 건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다. 전속모델인 전지현을 내세운 복고풍 화보와 광고로 벌써부터 소비자들의 눈도장을 받고 있다. 롤러스케이트를 탄 전지현이 나팔청바지에 ‘프레도 폴로티셔츠’를 함께 매치해 패셔너블한 모습을 선보이면서, 아웃도어 의류가 아닌 캐주얼한 멋을 살린 옷으로 변신했다. 냉감 기능과 햇빛을 반사하는 원사를 사용한 점을 부각해 야외활동을 즐기는 하비슈머들을 겨냥했다. 네파의 경쟁사인 K2(‘비즈 린넨 반팔 폴로티’ 등)와 밀레(‘LD 아미 카라 티셔츠’ 등), 아이더(‘레든’) 등 아웃도어 브랜드들도 앞다투어 피케셔츠 열풍에 합류했다.

그러나 피케셔츠는 여름에 기피하게 되는 의류 중 하나다. 목에 덧대어진 칼라 부위 때문에 땀이 차서 피부에 달라붙고 활동하기 불편해서다. 또한 겨드랑이에 땀이 차면 셔츠에 그대로 부각돼 민망한 옷이기도 했다. 아웃도어 브랜드들은 이런 점을 보완했다. 땀 흡수가 뛰어나고 통기성이 높은 제품을 내놓았다. 겨드랑이 부분에도 땀이 차지 않도록 땀과 열을 흡수하는 제품을 적용한 곳도 있다. 피케셔츠가 아웃도어 활동을 즐기는 하비슈머들에겐 맞춤복이 된 셈이다.
아웃도어업계의 한 관계자는 “피케셔츠는 격식있는 옷차림의 출근용 오피스룩이 됐다가, 퇴근 후에는 활동이 편한 캐주얼한 복장으로 변신이 가능하다”며 “가격대도 고가의 아웃도어 의류와는 달리 6~8만원대로 구성해 부담이 적은 편”이라고 말했다.
도심 속 백화점 문화센터를 찾는 2030을 잡기 위해 문구업체도 나섰다. 스마트폰과 노트북 등의 사용으로 필기도구의 수요가 크게 떨어지자 미술 강좌를 여는 백화점들과 협업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볼펜으로 유명한 ‘모나미’는 현대백화점 문화센터와 손잡고 여름학기 워라밸 수업에 취미미술 강좌를 편성했다. ‘컬러트윈브러시’로 수채 캘리그라피 완성하기, ‘플러스펜’으로 카페 드로잉하기 등 성인 취미미술 가운데 선호도 높은 주제로 구성해 운영한다. 현대백화점의 경우 지난해 겨울학기 문화센터 회원가운데 평일 오후 6시 이후 강좌 수강생이 전년 대비 21.1%나 늘었다. 신세계백화점 문화센터도 올 봄학기 수강생 중 20~30대가 전체 수강생의 58%에 달했다. 2017년엔 8%에 그친 바 있다.


모나미는 문화센터가 하비슈머들에게 인기를 끌자 경기 수지 본사에 전문 작가들과 함께하는 ‘원데이클래스’도 매주 운영하고 이다. 5월초 열린 ‘모나미X전포롱 크레파스 드로잉’ 클래스는 1회 모집에 100여명이 신청해 조기마감을 기록했다.
취미미술에 대한 관심은 뜨거운 상황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필기구로 소소한 즐거움과 나만의 작품을 완성하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인 인스타그램에 캘리그라피 태그로 올라온 사진만 260만건이 넘고, 드로잉 관련 태그로도 300만건 이상이 공유된 것으로 나온다.
신동호 모나미 마케팅 팀장은 “볼펜이나 사인펜 등이 단순 필기구를 넘어 창작활동에 쓰이는 도구로 인식이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은영기자 kis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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