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밤 기자가 자카르타 외곽 수카르노하타국제공항에서 오토바이를 타고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 오토바이들은 경쟁하듯 배기가스를 토해냈다. 집집마다 쓰레기를 태우고 음식을 굽는 냄새가 매캐했다. 숨막히는 밤안개 속에 갇힌 형국이다. 자카르타는 공기가 최악인 세계 3대 도시(베이징 델리)에 속한다. 내연기관 배기가스와 폐기물 소각은 자카르타 공기를 병들게 하는 주요인으로 꼽힌다. ‘인도네시아에서 5분 일찍 가려다 5년 먼저 가려면 과속 대신 오토바이를 타면 된다’는 우스갯소리, ‘가가호호 비닐이나 플라스틱을 마구 태우는 것만 막아도 숨통이 트일 것’이라는 푸념이 나돌 정도다.
그래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살았는데, 성정이 순한 인도네시아인들도 나쁜 공기를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는지 드디어 폭발했다. 자카르타법률구조협회는 자카르타 시민 57명이 18일 자카르타중앙지방법원에 대통령과 환경부 장관, 자카르타 주지사 등을 상대로 자카르타 대기 오염의 책임을 묻는 소장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4일 ‘자카르타포스트’에 밝혔다. 소송 참가자 20명은 환경운동가이고, 37명은 학생, 교사, 회사원, 사업가, 변호사, 연구원, 공무원, 오토바이 및 택시 기사, 노인 등 각계각층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수도 자카르타의 대기 오염을 해결할 보다 엄격한 정책을 만들 것을 정부에 촉구할 목적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1999년 만든 대기 오염 관련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라며 “대기 오염이 그만큼 심해짐에 따라 새 규정이 필요하다는 것”(본단 안드리아누 그린피스 인도네시아지부 활동가)이다. 누르 히다야티 인도네시아 환경포럼 대표는 “오염된 공기를 마실 수밖에 없는 시민들을 대변해 소송에 참여한다”라며 “깨끗한 공기를 누리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우리의 권리”라고 강조했다.
소송단에 따르면 세계보건기구(WHO)의 초미세먼지(PM2.5) 권고 기준이 연평균 10㎍/㎥(1입방미터당 10마이크로그램)인데, 자카르타는 34.5㎍/㎥까지 올라간다. PM2.5는 급성 호흡기 감염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고 특히 어린이 건강에 해롭다. 소송에 참여한 한 시민은 “우리 아이는 공기가 더 깨끗한 해외로 나가면 아무 문제 없는데 자카르타에 있을 때만 축농증을 앓는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자동차(등록 자가용 1,700만대) 오토바이 등 교통수단 외에 다른 오염원도 지목했다. 그린피스 인도네시아지부는 자카르타 100㎞ 지점의 가동 8년째인 석탄화력발전소가 대기 질을 악화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전국 13개 관측소에서 미세먼지를 측정은 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책을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배출가스 기준 강화는 기름값 상승에 따른 서민경제 위축을 이유로 2021년까지 유예한 상태다. 전기자동차, 전기오토바이 보급은 아직 계획단계다. 자전거 타기 홍보는 먹히지 않고 있다. 다만 미세먼지의 70%를 교통수단이 유발한다고 보고 도심고속철도(MRT), 버스전용차로, 차량2부제 등을 시행하고 있다.
자카르타=고찬유 특파원 jutda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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