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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구시는 탈코르셋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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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대구시는 탈코르셋하라

입력
2019.06.05 04:40
수정
2019.06.10 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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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24일부터 3일간 열린 내고장사랑대축제에는 5만여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운집했다.
5월24일부터 3일간 열린 내고장사랑대축제에는 5만여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운집했다.

5월24일부터 3일 동안 대구 동구 율하체육공원 축제장은 뜨거운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다. 이 기간에 열린 내고장사랑대축제에 무려 5만여명의 시민과 관광객이 운집했다. 구청 관계자는 “율하체육공원이 생긴 이래로 최대의 인파였다”고 감탄했다. 한때 포털사이트에 율하공원이란 검색어가 검색 순위 상위에 걸리기도 했다. 내 고장 우수 상품 및 특산품 팔아 주기 운동의 취지와 목적에 부합하는 풍경이었다. 주요 먹거리 부스에는 줄이 길게 늘어졌고, 고가의 흙침대가 3개나 팔리는 등 일부 품목은 큰 인기를 누렸다. 판매실적이 인파에 비해 크게 부진한 부스도 있었지만 부스 참가자들 모두 “아이템만 잘 선정하면 대박”이라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구미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영도벨벳은 패션쇼 등을 통해 세계 최대 벨벳기업으로 최고의 품질과 제품의 다양성을 시민들에게 알리는데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축제에 나온 주민 대부분이 관계자들에게 “동구에서 이렇게 큰 축제는 처음이다”, “자주 이런 행사를 열어달라”고 주문했다.

이 모든 일의 중심에 미스코리아와 미스대구가 있었다. 미스대구선발대회는 일찍부터 단순 미인 뽑기 대회에서 벗어나 여성 인재 발굴 및 양성과 이들의 사회공헌을 위한 지역축제로의 전환이라는 대변혁을 시도했다. 이 도전이 시민들에게 먹혀든 것이다.

대구시가 미래 먹거리의 하나로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뷰티 산업과 연계된 축제라는 사실도 시민들에게 적잖은 공감대를 끌어냈다. 대구 하면 떠올리는 ‘미인의 도시’, ‘섬유, 패션의 도시’ ‘첨단의료 복합단지’ 등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테마가 뷰티다. 일부 전문가들은 “뷰티는 21세기 최고의 산업으로 향후 불경기 없이 지속성장이 가능한 영역인 데다 대구시의 경우 전통적으로나 현 산업구조 등으로 볼 때 이 산업에 가장 부합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향후 집중적으로 추구해야 할 도시 브랜드가 바로 ‘뷰티 도시’”라고 강조한다. 대구시는 인구 대비 뷰티 관련 학과와 교육기관, 종사자의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에 속한다. 뷰티 도시의 브랜드 및 산업의 홍보 총아는 누가 뭐래도 바로 미인이다. 그런 까닭에 이번 미스대구선발대회 무대를 지켜보면서 온 가족이 함께 텔레비전 앞에 둘러앉아 진선미를 꼽아보던 옛 추억에 잠기는 이들도 있었지만, 대구시의 미래 먹거리 산업인 뷰티 산업에 대한 인식을 투영해 대회의 면면을 진지하게 분석한 이들도 적지 않았다.

반면, 미스대구선발대회를 곱잖게 보는 시각도 있다. 최근 일부 여성단체는 피켓 시위까지 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좋은 일이다. 자기 의견을 거리낌 없이 표출하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온당한 일이다. 우리 민족의 올곧은 정신에 비추어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조선의 선비들은 도끼를 들고 궁 앞에 나아가 임금에게 상소를 올렸고, 신하들은 임금에게 잘못이 있으면 혹독한 말들을 가져와 임금을 몰아붙였다.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것은 그만큼 우리 사회가 건강하다는 증거이다. 그런 자유가 없다면 언론 역시 존재하기 힘들 것이다.

미스대구선발대회는 그동안 여성단체의 의견을 적극 수렴해 다양한 부분에서 큰 변화와 발전을 가져왔다. 여성 성상품화 논란과 심사 비리 등을 방지하기 위해 심사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개선, 참가자뿐만 아니라 직접 참가한 심사위원이라면 누구나 “정말 공정하다”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단순 외모에만 치우친 심사점수도 대폭 손질했다. 영어 인터뷰와 인터뷰 점수 비중을 30%까지 올린 것 역시 여성단체의 지적을 충실하게 반영한 결과였다. 돈 안 드는 대회를 만들기 위해 지역 대학들과의 산학협력을 통해 출전자들이 놀랄 만큼 부담을 크게 줄였다. 단순한 미인 선발 대회에서 ‘여성 인재 발굴 및 양성’, ‘지역공헌’, ‘지역축제’라는 기치를 내걸고 이 취지에 맞게 대회를 꾸준하게 개선해왔다.

시간이 지나면서 놀라운 결과물들이 쏟아졌다. 2002년에 미스대구와 미스코리아를 계기로 하버드로 진학해 그곳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친 후 동국대 교수로 재직 중인 금나나를 비롯해 최초의 미스코리아 기자와 공중파 아나운서 공채에 합격하는 수상자가 나오는 등 여성 인재들이 연이어 배출됐다.

이들의 재능기부 등으로 시작된 사회공헌의 성과도 두드러졌다. 상품 및 기업홍보 등에 목말라하던 지역 기업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이들의 작은 기부로 시작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은 지금까지 자그마치 5억원에 달한다. 현재 대구지체장애인협회가 달서구에서 운영하고 있는 중증자활센터가 미스대구 수상자들의 기부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지역축제화라는 모토도 다르지 않다. 가는 곳마다 역대 최대 인파 운집 갱신이라는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지역민들의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다. 이달 중순 성주참외축제와 함께 열린 2019 미스경북선발대회도 예외가 아니었다. “성주에서 이런 행사는 처음”이란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이런 성과들이 외면받는다는 것 외에도 여성단체에게 아쉬운 점이 또 있다. 우선, 그들이 제기하는 문제의 포인트가 지나치게 낡았다. 동일한 대상이라 할지라도 시대에 따라 보는 관점과 인식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전엔 몰랐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까닭이다.

100여년 전, 우리나라에 처음 야구가 들어왔을 때 야구 경기가 열리면 ‘밥지랄한다’고 쓴소리를 하기 일쑤였다. 선수들은 ‘운동꾼’, ‘놀음꾼’으로 불렸다. 그러다 ‘조선’팀이 일본팀을 꺾는 파란을 일으키면서 야구는 민족운동의 일환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지금은 그에 못지않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 여가 문화이자 거대한 산업으로 정착했고, 한국과 한국인의 능력과 자질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홍보수단이기도 하다. 류현진이나 손흥민 같은 경기장에 나서는 날이면 온 세계가 그들을 탄생시킨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에 관심을 기울이고 베트남은 박항서 감독의 일거수일투족에 열광한다. 누가 그들의 활동을 두고 ‘밥지랄한다’고 할 것인가.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한류 스타들도 한때는 ‘딴따라’라고 불렸다. 이땅에서 활약한 가수와 배우 중에 부모의 반대로 가출 소동 한번 일으키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다. 지금은 ‘선생님’으로 통하지만 한때는 초면에 말을 놓거나 대놓고 손가락질을 해도 괜찮은 직업군으로 통했다. 세월이 흐르고 흘러 지금은 대한민국이라는 브랜드를 끌어올리는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요컨대, 세상이 바뀌었다.

뷰티는 가장 많은 변화가 일어난 분야다. 농업과 단순 제조업에 의존하던 시절에는 ‘분칠’이라고 폄훼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당당하게 산업의 중심부로 들어선 지 오래다. 한류 영화와 드라마, K팝과 가장 근거리에서 보조를 맞추는 단어도 ‘K뷰티’다. 한국 가수와 배우를 보면서 ‘한국인 같은 피부’나 외모를 꿈꾸는 이들이 무수히 많다. 매력자본이라는 말이 하나의 관용어로 자리 잡은 요즘 ‘뷰티 산업’은 확장 일로에 있다. 국가의 경제가 발달할수록 뷰티 관련 소비가 폭증하고 매력자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다. 최근 경제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아시아 지역에 K뷰티의 약진이 두드러지는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다양성 혹은 포용성의 문제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가 발달할수록 다양한 가치와 신념, 요소들을 받아들인다. 물론, 무조건 수용을 말하는 건 아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더라도 ‘사이비’로 분류된 집단에 대한 경계는 늦출 수 없듯, 마지노선은 있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최대한의 다양성을 허용해야 공동체만이 번영할 수 있다. 경제만 놓고 보더라도 전제적인 나라일수록 작은 충격에도 온 나라가 휘청댄다. 반면, ‘정답’을 찾기 위해 경제학자와 전문가들이 격렬한 논쟁을 벌이는 나라는 비교적 안전하게 난관을 헤쳐나간다.

한때 중국은 곡식을 먹는 참새를 죽이면 곡류 생산량이 늘 것이라는 생각에 참새를 박멸했다. 그 결과 해충이 창궐해 수천만이 굶어 죽는 사태가 발생했다. 다양한 사고의 결여, 혹은 대자연에서 참새라는 다양성의 한 요소를 훼손한 것이 그토록 큰 비극으로 돌아온 것이다.

다양한 시각과 정체성을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오직 한 가지만 답이라는 생각은 위험하다. 외모지상주의가 문제라고 해서 뷰티 산업까지 없앨 수는 없다. 부족하거나 부정적인 부분은 보완하고 고쳐나가면 될 일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명의 이기 대부분이 인류가 지혜를 짜내 수정하고 보완한 덕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게 된 것들이다.

가장 큰 문제는 대구시의 태도다. 여성단체가 피켓을 들자 대구시는 한약방에 잡혀 온 자라처럼 모가지를 쑥 집어넣었다. 대구시 고위 공무원의 내고장사랑대축제 참석률이 제로(0)였다. 무조건 반사나 다름없었다. 섬유패션의 도시이자 뷰티산업의 부흥을 천명한 도시의 공무원들인가 의아스러울 정도였다. 혹시나 분이 묻을까, 미스대구선발대회 무대는 물론 내고장사랑대축제 현장에서도 멀찍이 떨어졌다. 미스대구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과 지역 뷰티 산업의 상징으로 활용하려 애쓰는 업계 관계자들에게 대한 배려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몇 해 전 고위 공무원이 ‘미스코리아 박물관’을 만들어 뷰티 산업의 상징으로 활용하고, 미스대구선발대회를 잘 홍보해서 뷰티 산업의 중심도시로 발돋움하자는 아이디어까지 냈지만, 그런 활발한 논의들은 모두 망각의 강에 버려졌다. 지금까지 미스대구와 손잡고 펼쳐온 다양한 사업들을 깡그리 부정하는 태도였다. 혹시라도 논란에 휘말릴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전부였다.

조금 넓게 보자면, 지역 내 숱한 축제들이 예산 낭비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축제를 위한 축제가 대부분이다. 지역민들은 위하고, 특히 사회공헌에 이바지하는 축제는 드물다. 가장 또렷한 성과를 내는 축제 중의 하나가 미스대구와 함께하는 내고장대축제라는 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지만 이를 대변할 이들이 시민단체의 일성에 바람보다 빨리 흩어지고 말았다.

냉정하게 말해서 여성단체의 주장은 여러 의견 중의 하나다. 건강한 사회는 어떤 의견이라도 귀를 기울이고 일리가 있는 말이라면 받아들여야 하지만, 눈치 보기와 줄서기는 위험하다. 그저 논란이 두려워 꽁무니를 빼는 태도는 공정하지도, 합리적이지도, 실리적이지도 않다. 눈치 행정은 곧 영혼 없는 업무 처리와 다름없다. 다양한 의견과 주장이 쏟아지는 민주사회에서 공무원들이 눈치 행정으로 일관한다면, 신념과 열정을 바탕으로 시간과 공을 들여야 하는 주요 사업들은 일찌감치 단념하는 게 옳다.

일은 성과를 내는 것이 요체다.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고, 아무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그런 자세라면 오직 보여지는 것만 잘 꾸며서 출셋길을 잡은 신데렐라와 무엇이 다를까. 로맨스 동화 같은 사고에서 깨어나야 한다.

고위 공무원들이 오직 환호를 보장받는 자리에만 참석하려는 것은 시청이 포퓰리즘에 잠식당했다는 증거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포퓰리즘이 정책이 될 수 있을까. 윗물에서 신념도 진정성도 없는, 오직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고수한다면 아랫물의 대책은 보나마나다.

무엇보다 리더가 중요하다. 리더는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대중들이 반대하더라도 미래지향적인 정책들을 밀고 나가야 한다. 돌팔매도 감내해야 한다. 인기영합주의 정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진정한 리더의 자세는 아니다. 아무리 그럴싸하게 보이려고 노력해도 결국 시민들은 성과로 판단할 것임을 알아야 한다. 당장의 반응을 ‘역사적 평가’라고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시민들은 반드시 진짜를 가려낼 것이다.

결정권이 큰 자리일수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두루 의견을 묻되 판단은 진중하게 하고, 유연하되 일관성 있는 행정을 추구해야 한다. 대구시는 무사안일과 인기영합주의를 탈코르셋하라.

유명상 대구한국일보 대표

정리=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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