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손으로 핸들을 잡고 있을 필요가 없는 5G(세대) 통신 자율주행 시대에 자동차가 갖는 의미는 크게 달라진다. 더 이상 전방을 주시하며 라디오나 음악만 듣는 공간이 아니라 영상을 비롯해 다양한 미디어를 즐길 수 있는 ‘이동형 안방극장’이 된다는 뜻이다. 전 세계 통신과 자동차, 미디어 기업들 역시 자동차가 TVㆍ스마트폰에 이은 또 하나의 새로운 미디어 디바이스가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디어 송수신 기기로서의 자동차, 즉 ‘인카(In-Car) 미디어’ 환경을 누가 먼저 구현하느냐가 업계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 초기 모습이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구현됐다.
4일 제주 영평동 도로를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 안. 뒷좌석 각 2개와 조수석 앞 1개 스크린에서 미국 축구 리그 경기가 깨끗한 고화질로 끊김 없이 중계됐다. 중간 광고 시간이 되자 뒷좌석 2개 스크린에선 서로 다른 광고가 나왔다. 최근 5G 요금제에 가입하려고 검색했던 자리에선 5G 광고가, 여름휴가 계획을 짜던 옆 좌석에는 리조트 광고가 송출됐다. 차가 식당이 밀집한 거리로 들어섰을 땐 근처 국수 맛집 정보가 표시됐고, 화면을 터치하자 운전석 앞 스크린 속 내비게이션이 맛집까지 가는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SK텔레콤과 미국 최대 지상파 방송그룹 싱클레어, 차량용 인포테인먼트(IVI) 시장 1위 기업 하만이 한국 제주의 도로에서 5G 기술과 방송 송출 시스템을 결합한 ‘5G-ATSC3.0’을 시연한 현장이다.
◇이동 중 쌍방향 통신 ‘차세대 미디어’
ATSC3.0은 미국 디지털TV 방송 표준화 단체(ATSC)에서 정한 울트라고화질(UHD) 방송 표준으로, 방송계의 5G와 같은 성격이다. 주파수 위에 영상과 소리만 실어 일방향으로 방송을 내보내는 기존 표준과 달리 이동통신처럼 각종 데이터를 송출자와 수신자가 주고받을 수 있다. 한 번에 많은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기 때문에 고속으로 이동 중인 환경에도 최적화된 기술이다.
SK텔레콤과 싱클레어, 하만은 여기에 5G 기술까지 더했다. 고화질 영상 뿐 아니라 개인 맞춤형 광고를 비롯해 스포츠 중계 중 실시간 각도 변경, 위치 기반 교통정보ㆍ맛집정보 업데이트 등 양방향 미디어 서비스를 구현한 것이다. 3개 회사는 이 기술을 올 하반기부터 미국에 공급한다.
이날 중계 시연은 국내 주파수 환경을 감안해 일반 DMB(이동형 방송)보다 4배 선명한 풀HD로 진행됐다. 미국에서는 DMB 대비 16배 선명한 UHD 중계가 제공될 계획이다. 맞춤형 광고는 5G 망이 각 좌석에 앉는 사람의 로그인 정보 등을 분석해 필요한 콘텐츠를 노출하는 원리다. 방송망과 5G 망으로 각각 다른 각도에서 동시에 찍은 영상을 전달받을 수 있기 때문에 축구 중계 중 분할 화면으로 공격수, 골키퍼 시점의 화면을 동시에 보거나 느린 화면으로 인상 깊었던 장면을 다시 감상하는 것도 가능하다.
◇미국 방송시장 진격하는 한국 기술
이번 기술은 올 하반기부터 싱클레어가 미국 내 89개 권역에서 운영 중인 방송국 191곳을 통해 시장에 출시될 예정이다. 우리나라는 이동통신 기술이 워낙 발달돼 있어 이동 중 미디어 시청이 자연스럽지만, 미국은 대도시 중심으로만 초고속 통신이 가능한데다 DMB가 상용화돼 있지 않아 이동 중에는 비싼 데이터 요금을 내야 한다. SK텔레콤이 5G 차세대 미디어 기술로 미국 시장부터 진출하려는 배경이다.
이종민 SK텔레콤 테크이노베이션그룹장은 “미국 지상파 1위, 전장 1위 기업과 세계 1위 5G 기술이 만나 미국 방송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라며 “SK텔레콤뿐만 아니라 다양한 한국 미디어 강소기업들이 기술 수출 기회를 얻을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제주=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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