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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들 청년 아카데미 설립 첫발 뗐지만… ‘알아서 커라’식 이벤트 그쳐

입력
2019.06.10 04: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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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트업! 젊은 정치] <2> 2부 리그가 아닙니다 

 “인재 육성 아카데미 지속하려면 당이 국회 진출 길 모색해야”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바른미래연구원에서 ‘청년정치학교’ 3기 수강생들이 ‘정책 해커톤’ 방식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류효진 기자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바른미래연구원에서 ‘청년정치학교’ 3기 수강생들이 ‘정책 해커톤’ 방식으로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다. 류효진 기자

“아이돌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육성하고, 경쟁시키는 만큼, 왜 정치인은 그렇게 준비시키지 않을까요?”

바른미래당의 청년 인재 육성 프로그램인 ‘청년정치학교’를 설계하고 고안한 이지현 공유정치연구소 대표(전 바른정책연구소 부소장)의 일갈이다. 아이돌을 길러내는 연예기획사에 비해 확연하게 빈곤한 정치권의 인재풀에 문제의식을 가진 이 대표는 SM엔터테인먼트를 찾아가 인재 발굴ㆍ양성 시스템을 배워 정치 영역에 적용, 2017년 바른정당에서 ‘청년정치학교’의 닻을 올렸다.

“현실 정치는 정말 어려워요. 조직의 바닥에서 굴러보고, 야단도 맞아보고, 위계에 밀려도 보고, 뒤통수도 맞아보고, 유권자들에게 침까지 맞다 보면, 나도 모르게 근육이 쌓여가고 진짜 내가 어떤 정치를 해야 하는지 깊은 고민을 하게 되거든요. 아이돌은 식단, 언어, 인성 등 자기 관리와 여러 교육을 철저하게 받잖아요. 그런데 우리 정치권은 ‘누구 의원님 행사’에, ‘누구 라인’에 가서 공천받는 문화에 젖어 있는 게 안타까웠어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한 ‘청년정치학교’는 올해로 3년(3기)째 순항하고 있다. 1기에는 6개월 과정인데도 정치입문 지망생들의 경쟁률이 6.6대 1에 달했다. 지난 3일 오후 7시30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바른미래연구원(바른미래당 싱크탱크)은 새 학기 대학 캠퍼스처럼 생기가 넘쳤다. 수강생 30여명은 조를 짜고 모여 앉아 각각 젠더ㆍ스타트업ㆍ공천 등 다양한 주제를 두고 ‘정책 해커톤(해킹과 마라톤의 합성어로 한정된 기간 내에 아이디어를 도출해 결과물을 완성하는 것)’ 방식으로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수강생 이내훈(35)씨는 “우리 정당들에 이런 교육과정이 없어 대체로 만족한다”면서도 “개론적인 이야기를 많이 다루는 건 아쉽다”고 절반의 만족감을 드러냈다. 현실 정치와 가장 가깝게 맞닿아 있는 정당에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정치학개론’ 이상의 것을 알고 싶다는 생각이다.

 ◇ 정당 내 인재 육성 과정, 첫 걸음은 뗐지만 

최근 정치권은 당내 아카데미를 설립하는 등 젊은 인재 육성에 나서는 분위기를 보이기 시작했다. 선거 시즌에 닥쳐 신선한 인물을 찾으려 이곳저곳 기웃거리기만 한 과거와 사뭇 달라진 풍경도 보인다. 젊은 이미지를 홍보하려 청년을 소비한다는 비판을 받던 정당이 점차 ‘동원’이 아닌 ‘육성’의 관점에서 청년을 바라보기 시작한 점은 의미 있는 시도다. 하지만 민주시민 교육 수준에 불과해 직업정치를 하려는 이들에게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고, 진로에 대한 체계적인 청사진이 없어 정치 경력의 징검다리가 되지 못하는 점이 한계로 꼽힌다.

바른미래당은 원내 정당 중 인재 육성에 가장 공을 들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청년정치학교는 △특정 이념에 치우치지 않을 것 △특정 계파에 들어가지 않을 것 △정당 가입 의무 없음이라는 ‘3대 원칙’을 전제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만들어가는 장(場)을 제공한다. 정치, 경제, 외교ㆍ안보 등 다양한 주제의 강의를 듣고 치열하게 토론하고, 의원 보좌진으로부터 직접 법안과 예산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공부한다. 커리큘럼이 입소문을 타면서 다른 정당 출신들도 수업을 듣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최근 공개오디션으로 자유한국당 강남을 조직위원장이 된 31세 청년도 같은 과정 1기 출신이다.

지난해 6ㆍ13 지방선거에는 청년정치학교 수료생 12명이 후보로 출마했으나, 당선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당과 싱크탱크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프로페셔널 정치인’을 배출하는 기관으로 옮겨가는 이유다. 조용술 청년정치학교 교무처장은 “지금은 민주시민 교육에 방점을 두고 있지만 교육생 중 정치를 직접 하고 싶어 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현장에 던져 정치인으로 살아남도록 이끌어줄 ‘정치인 사관학교’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의 ‘진보정치 4.0 아카데미’는 실전에 강한 커리큘럼을 자랑한다. 다만 공천과정이나 채용 등 진로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청년 노회찬’을 양성하겠다는 취지 아래 만 35세 이하 청년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9월부터 5학기 과정의 수업을 진행했다. 수강생들은 평화와 경제, 정당정치 일반, 경제와 노동, 페미니즘과 소수자 의제 등에 대해 배우고 직접 쓴 논평으로 국회 정론관에서 브리핑하기도 했다.

실제 정치인이 된 것처럼 거리로 나가 연설해보고, 정치인으로서 말하는 법을 닦는 건 후보로 출마하지 않는 이상 얻기 힘든 귀중한 기회다. 지난해 10월 말 거리에서 마이크를 잡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중에 설명했던 박예휘(27) 정의당 수원지역위원회 사무국장은 “지식으로 배우는 정치뿐 아니라 좋은 정치인의 소양을 기르겠다는 당의 취지에 공감해 수업을 들었다”며 “홍대 앞에서 래퍼 마미손 분장을 하고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설명한 경험은 결코 잊지 못할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씨를 비롯한 우수 수료생 8명은 지난달 31일 청년의 정치 참여와 정당 활동을 배우기 위해 독일로 떠났다.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은 당내 청년 조직인 청년위원회, 대학생위원회 등에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다른 당에 비해 과정이 짧고 그마저도 현직 정치인 강의로 채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2014년 시작된 민주당 ‘청년정치스쿨’은 현직 국회의원과 장관과의 만남 위주로 사흘간, 한국당 ‘청년정치캠퍼스’는 8회 과정으로 두 달간 진행된다. 현실 정치를 체험하고, 전문 정치인이 됐을 때 필요한 실무를 배우기엔 턱없이 짧은 시간이다.

이재묵 한국외국어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도 10대에 사민당에 입당, 전문 정치인으로 성장했다”라며 “국내 정당이 지금이라도 젊은 인재 육성을 고려하는 건 의미 있지만, 여전히 6개월 활동하면 수료증을 주고 ‘알아서 커라’는 식의 일시적 이벤트에 그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인재 육성 아카데미가 지속 가능하려면 지방의회 공천을 적극적으로 권장하고, 국회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을 당이 함께 모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김혜영 기자 sh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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