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들 음악 듣고 좋아해
음악 있는 요양센터 만들고파”
[저작권 한국일보]김병수씨는 "음악은 위대하다"며 간호에 음악을 접목한 새로운 영역에 도전해보겠다고 말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간호사, 피아니스트, 음악치료사, 대학교수. 대구동산병원 응급실 간호사 김병수(48)씨에게 붙어 다니는 수식어다. 그는 ‘간호사가 된 피아니스트’다. 김씨는 “외래 진료 대기 중이거나 입원한 환자들이 제 음악을 듣고 지루함을 잊거나 고통을 덜 수 있다면 기꺼이 피아노 앞에 앉겠다”며 간호 일이 천직이라고 말했다. 그는 매일 아침 출근해 응급환자를 대상으로 체온ㆍ맥박ㆍ혈압 등을 측정하고 주사를 놓는 등 일상적인 간호업무를 수행한다. 아직 오리엔테이션 기간이라 야근은 없다. 이전 직장에서 경험하지 못한 일을 배우느라 하루가 어떻게 지났는지 모를 정도다. 이 병원 응급실엔 간호사가 모두 13명이고, 이 중 4명이 남자다.

김씨는 “간호사로서 경력이 그리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분야에선 ‘중견’인데, 아직도 배워야 할 게 너무 많다”며 “긴박하게 돌아가는 응급실에서 저 하나의 작은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초래할 수도 있는 만큼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간호사 경력 3년 차의 ‘평간호사’다. 2017년 2월 수성대 간호학과(4년제)를 졸업하고 간호사 면허를 취득했다. 그해 9월 울진군의료원에 취업했다가 지난 1일부터 대구로 옮겼다. 2010년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울진군의료원에 간호사로 취업하기까지 이전까지 줄곧 병원에서 일했다.

그는 원래 피아니스트다. 지금도 피아노를 놓지 않고 있다. 김천예술고를 졸업한 뒤 영남대 음대와 대학원(석사)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10년 동안 피아노 학원도 운영했다. 베토벤 소나타 32곡 중 8번 비창을 가장 즐겨 연주한다.

대학∙대학원 졸업장도 4개나 된다. 수성대 음악과에 90학번으로 입학해 졸업한 뒤 군복무 후 영남대 음대 95학번으로 입학했다. 내친김에 영남대 교육대학원 음악교육과 석사(2급 정교사)과정을 마쳤고, 급기야 수성대 간호학과 12학번으로 입학해 5년만에 졸업했다.

대학원에 진학한 2000년부터 음악학원을 열어 10년간 운영했다. 대학원 졸업 후에는 모교인 수성대를 비롯해 대구예술대, 호산대 등에서 외래교수(시간강사)로 활동했다. 그의 시간강사 생활은 울진군의료원에 취업한 2017년 1학기까지 계속됐다.

[저작권 한국일보]김병수씨가 대구 중구 대구동산병원 응급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kjcheong@hankookilbo.com

나름 잘나가던 피아니스트인 그가 간호사의 길을 걷게 된 것은 부모 병간호 때문이었다. “평소 건강이 좋지 않던 어머니(73)의 병세가 악화해 병구완을 잘 하기 위해 2009년 간호조무사 학원에 등록했다”고 말했다. 언뜻 이해가 안 갈 수도 있지만 키워 주느라 고생하신 어머님을 아들 된 도리로 집에서도 잘 보살피고 싶었단다. 이듬해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취득한 뒤 모친이 통원치료를 하던 대구∙경북지역 병원에 취업해 모친을 간호했다. 이번에 대구로 옮긴 것도 같은 이유였다. 그는 “아버지(77)가 지병이 악화해 가까이서 보살피려고 대구로 이직을 결심하게 됐다. 낳아 주고 길러 주신 부모님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뒤늦게 간호학과에 진학했지만 녹록지 않았다. “병원의 협조로 야간근무만 했다. 이때부터 학원도 접었다. 수성대 간호학과 재학 시절은 참 애매했다. 간호학과에선 학생이고, 유아교육과에선 음악을 가르쳤다. 한데 나이가 많다고, 교수라고 봐주는 게 전혀 없었다. 예고를 나온 데다 음악만 해 왔던 터라 간호학과 공부가 힘들었다. 졸업의 필수코스인 병원 실습 때는 거의 매일 코피를 흘릴 정도로 힘들었다. 1년 휴학했고 동기들보다 그만큼 졸업이 늦었다.”

간호와 인연을 맺으면서부터 병원에서 재능기부도 본격화했다. 2009년부터 10여명으로 구성된 ‘아마빌레 앙상블’ 단원으로서 대구의료원의 호스피스 병동에서 3년간 매주 화요일마다 피아노를 연주했다. 거기서 환자들이 좋아하는 걸 보고 2011년 음악치료사 자격증도 땄다. 울진군의료원에 재직할 때도 대기환자가 많은 매주 월요일 오전 8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자신의 전자피아노를 들고 와 클래식은 물론 신청곡으로 대중가요까지 연주했다. 모친이 치료를 받던 병원에서도 수시로 피아노를 쳤다.

새 직장에서도 자리가 잡히면 음악봉사를 재개할 생각이다. “지난 4월 대구동산병원에 간호사 채용공고를 보고 지원했지만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피아니스트인 제가 이곳에서 할 일이 있지 않았나 생각한다. 아픈 사람들이 제 음악을 듣고 조금이나마 고통을 덜 수 있다면 언제 어디든지 피아노를 치겠다.”

김씨는 “먼 훗날이 되겠지만 간호사 신분으로 할 수 있는 요양센터 같은 것을 개원해 음악이 흐르는 센터를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것은 전혀 기억 못하는 치매환자도 어떤 곡은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따라 부르는 것을 볼 때 음악의 위대한 힘을 느꼈다”며 “음악가로서의 장점을 살려 음악치료의 영역에 도전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직 미혼이다. “하지만 독신주의자는 아니다“라며 웃었다.

정광진기자 kjcheon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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