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경제가 잇단 악재에 휘청거리고 있다. 세계 경기 불황이 생각 이상으로 지속되고, 설상가상 미국과 중국의 무역분쟁까지 심화되는 상황. 7년만의 경상수지 적자 가능성이 제기되고, 최근에는 무역수지 흑자가 급감하면서 위기감은 더욱 커지고 있다.
언제까지나 승승장구할 듯 보였던 반도체 부문의 수출 부진은 경제 전망에 대한 위기 의식을 더욱 키우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지난 5월 수출 현황을 보면 반도체 수출은 한 해 전에 비해 30.5%나 쪼그라들었다. 2009년 3월(-38.0%) 이후 10년 만의 최악 성적표다. 석유화학, 철강, 디스플레이 등 기존 수출 주력 품목들이 한꺼번에 동반 부진에 빠져 있다.
전체 경제 지표도 암울하기만 하다. 성장률은 여전히 2%대에 발이 묶여 있고, 침체된 경제는 설비투자나 건설투자 등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소비심리도 당연히 부진할 수밖에 없고 가계 빚 부담 증가, 자산가격 하락 등으로 인한 소비 감소는 내수 경제 전체를 휘청거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기업들은 항상 위기를 기회로 삼아왔다. 기술력 확보와 체질개선 등으로 한국 경제가 맞이할 미래에 과감한 투자를 해왔고, 지금도 저마다의 차별화된 전략으로 위기 돌파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젊은 총수들…젊음으로 정면 돌파를 선언하다
재계에서는 ‘확 젊어진’ 대기업 총수들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그간 재계를 이끌던 1,2세대 총수들이 물러나고 비교적 젊은 나이인 40, 50대 3,4세 리더들이 경영 전면에 등장했다. 이들은 젊음과 패기를 무기로 아버지 세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불필요한 격식을 배제한 채 직원들과 소통하며 위기 상황에서 보다 혁신적이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평가다.
2014년부터 삼성전자 경영을 총괄하고 있는 이재용 부회장은 메모리 반도체 분야의 절대 강자인 삼성전자의 혁신과 변화를 이끌고 있다. 최근엔 전자 분야 사장단을 주말에 불러내 4시간 가까이 마라톤 회의를 갖는가 하면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도 1등을 차지해야 한다는 뚜렷한 목표를 제시하는 등 누구보다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은 자율주행과 전기차 등 미래차 개발에 14조7,000억원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밝혔다. 2020년까지 고도 자율주행차, 2030년에는 완전 자율주행차를 상용화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이를 위해 2021년까지 정해진 조건에서 운전자가 운전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도 시스템에 의해 차량의 속도와 방향이 모두 통제되는, 4단계 수준의 도심형 자율주행 시스템 상용화를 추진하겠다면서 미국의 자율주행 전문 기업과 기술 공동 개발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정 부회장은 수소 및 수소전기차 중장기 로드맵도 공개했는데 계획대로 진행되면 현대ㆍ기아차는 2030년 국내에서만 수소전기차를 50만대 생산하게 된다. 정 부회장은 기존 자동차기업을 뛰어넘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으로의 도약을 공식화하면서 10대 그룹 중 최초로 정기공채를 없애고, 직원들의 복장을 전면 자율화하는 등 ‘젊은 현대ㆍ기아차’를 이끌고 있다.
일찌감치 ICT 분야에 관심을 갖고 하이닉스를 인수했던 최태원 SK 회장은 사회적 가치라는 화두를 그룹 안팎에 설파하는데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사내 구성원을 직접 만나 소통하는 ‘행복토크’를 올해 100회 이상 실시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계열사 임원부터 신입사원까지 가리지 않고 만나 허심탄회하게 소통하고 있다. 최 회장은 베트남과 중국 등을 방문해 해외 투자로 신성장동력을 마련하는데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유럽에 제2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9,452억원을 투자할 계획이고, 지주회사인 SK㈜는 미국 제약ㆍ바이오 기업인 앰팩 인수를 결정했다. SK바이오텍은 고부가가치 원료 의약품을 생산해 세계 각지 제약사에 수출을 하는 등 관련 분야에서의 미래를 밝게 하고 있다.
지난해 LG그룹 수장 자리에 오른 구광모 회장 역시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전기차 배터리와 자동차 전장 사업 등에 투자를 강화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 회장도 기존 유통업에서 화학 등으로 사업 영역을 넓혀가는 동시에 ‘디지털 혁신’을 강조하면서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AI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고도화된 쇼핑 어드바이저 플랫폼도 일찌감치 구축해 둔 상태다.
◇인공지능(AI)과 로봇 산업으로 4차 산업혁명 선도
삼성전자는 인공지능 관련 선행연구에 전력을 쏟고 있다. 2017년 11월 삼성 리서치를 출범시켜 산하에 AI센터를 신설한 것이 시작이었다. 지난해 1월에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구센터를 설립했으며 5월에는 영국 케임브리지, 캐나나 토론토, 러시아 모스크바에 추가적으로 연구센터를 열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가 해외에 구축한 AI연구센터만 해도 총 5개국 7곳에 달한다.
삼성전자는 연구센터가 본연의 연구는 물론 글로벌 인재를 흡수하는 통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우수 인재 영입에도 공을 들여 AI 분야 세계적 권위자인 미국 프린스턴대 세바스찬 승 교수, 코넬테크 다니엘 리 교수를 영입하기도 했다. 올해 3월 삼성전자 펠로우로 영입한 미국 하버드대 위구연 교수는 삼성리서치에서 인공신경망 기반 차세대 프로세서 관련 연구를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LG전자도 AI와 로봇 등 신성장산업 분야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 독자적인 AI 플랫폼인 ‘딥씽큐’를 적용한 올레드 TV와 8K 올레드 TV를 포함한 각종 초프리미엄 제품을 선보이면서 이 같은 경쟁력을 어느 정도 입증해 보였다. 가전의 메카인 창원 공장을 스마트공장으로 조성하기 위해 2023년 완공 목표로 6,000억원에 달하는 투자도 진행 중이다. LG 관계자는 “가전이나 자율주행, 스마트팩토리 등 AI 기능을 계속 확대해 가고 국내ㆍ외 로봇기업 투자와 협업을 통한 차별화된 기술 확보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LG는 인재 유치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2월 서울 강서구 마곡 LG사이언스파크에서 국내 이공계 석ㆍ박사 과정 연구개발(R&D) 인재 350명을 대상으로 컨퍼런스를 개최하는 등 지속적으로 우수 R&D 인력 유치에 나서고 있다.
◇초(Hyper)연결 시대…시장을 선도해 나간다
이동통신 업계의 눈과 귀는 새롭게 등장한 5G에 쏠려 있다.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전 산업 분야에 사물인터넷(IoT)이 우선 적용될 전망인데, 그 핵심 기술 중 하나가 될 5G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것이다.
SK텔레콤은 수도권 및 주요 도시를 중심으로 5G 서비스를 확대하는데 중점을 두고 있다. 미디어와 보안, 커머스 중심의 새로운 ICT 사업을 전개해 나간다는 게 주된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부터 5G 등 미래형 네트워크 조성에 6조원 등 총 11조원 가량을 투자하고 있다. 미디어 사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국 최대 규모 지상파 방송사인 싱클레어사와 손잡고 미국 차세대 방송 시장에 진출할 계획도 갖고 있다. 보안사업에서도 지난해 물리보안에서 정보보안까지 통합하는 서비스 체계를 구축했고, 올해 안으로 주차장 등에서 신규 보안 서비스를 선보일 예정이다.
KT 황창규 회장은 지난달 26일 그룹임원 워크숍을 통해 “세계가 KT의 5G에 주목을 하고 있다”며 “최고 수준의 5G 서비스를 위해 KT는 물론 그룹 전체 구성원이 함께 뛰자”고 독려했다. KT는 이미 △AI, 클라우드, 가상현실(VR) 등 융합 정보통신(ICT) 분야에 3조9,000억원 △5G 등 네트워크 분야에 9조6,000억원 △IT 고도화 등에 9조5,000억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진행해 나가고 있다. 특히 혁신성장의 한 축인 데이터경제 활성화를 위해 데이터 고속도로의 기반인 클라우드 분야에 5,0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올해 조직개편에서도 5G 시대에 성장이 예상되는 플랫폼 분야를 집중 육성하기 위해 미래사업 조직을 부문급으로 격상했다. 기존 미래융합사업추진실과 플랫폼사업기획실을 미래플랫폼사업부문으로 통합해 에너지, 빅데이터, 보안을 중심으로 사업을 추진해나가는 것도 미래 청사진의 일부다. 미래플랫폼사업부문 아래에는 신사업 발굴 및 육성 전담조직인 비즈인큐베이션센터를 신설했다.
5G 시대를 맞아 LG유플러스는 차별화된 콘텐츠 사업에 보다 역점을 두고 있다. 초고속, 초저지연, 초연결이라는 5G 특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U+5G 서비스를 선보이는 등 이미 400편 이상의 VR과 AR, 5,300편에 달하는 공연 콘텐츠를 시장에 내놨다. 5G 서비스를 직접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서울 강남역 인근에 팝업스토어 ‘일상로 5G길’을 조성했는데, 작은 5G 빌리지로 구성된 이 곳에서는 앞으로 나올 5G 서비스가 결합된 차세대 통신기술을 미리 체험할 수 있다. 하루 평균 평일에만 4,600여명, 주말과 휴일에는 1만명 이상이 찾아올 만큼 인기를 끌고 있다.
한화는 경쟁력 있는 글로벌 사업을 확대해 나가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지난 몇 년간 경쟁력이 약화했거나 시너지가 부족했던 사업 부문을 과감히 매각하고, 석유화학과 태양광 사업 부문의 수직계열화를 완성하고 강화해 가면서 경쟁력을 키우겠다는 게 김승연 회장의 뜻이기도 하다. 앞으로 5년간 태양광발전 장비 생산 공장을 신설하거나 증설해 발전사업에 9조원에 달하는 투자를 하기로 결정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한화 관계자는 “불확실한 경제환경 속에서 선제적인 대응으로 기업의 본원적인 경쟁력을 강화하고 핵심사업 부문에서는 세계 1등 경쟁력 확보에 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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