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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태 30주년… 중국인들은 “별 관심 없어, 왜 그런 걸 묻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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톈안먼 사태 30주년… 중국인들은 “별 관심 없어, 왜 그런 걸 묻냐”

입력
2019.06.03 17:08
수정
2019.06.03 23:26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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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현장 가보니… 늘 북적이던 광장, 공안이 에워싸 적막

3일 찾은 중국 베이징 톈안먼 망루. 마오쩌둥 초상화 양쪽으로 펼쳐진 담벼락에 공사용 가림막이 쳐 있다. 건국 70주년을 맞은 올해 10월 1일 국경절 행사를 위한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건너편 광장에서는 30년 전인 1989년 6월 4일 민주화시위로 1,000여명이 숨진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3일 찾은 중국 베이징 톈안먼 망루. 마오쩌둥 초상화 양쪽으로 펼쳐진 담벼락에 공사용 가림막이 쳐 있다. 건국 70주년을 맞은 올해 10월 1일 국경절 행사를 위한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건너편 광장에서는 30년 전인 1989년 6월 4일 민주화시위로 1,000여명이 숨진 유혈사태가 발생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톈안먼(天安門) 사태 30주년을 하루 앞둔 3일 현장을 찾았다. 1989년 6월 4일 민주화를 촉구하며 시위를 벌인 중국 학생과 시민 1,000여명(해외 인권단체 추정)이 숨진 곳이다. 이제는 베이징(北京)을 찾는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들르는 명소가 됐다.

하지만 이날만큼은 평일, 주말 상관없이 늘 북적이던 평소와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 버스에서 단체관광객이 우르르 내려 광장을 둘러보던 동쪽 도로변은 진입로를 차단해 아예 차량이 오가지 못했고, 반대편 서쪽 도로는 공안 순찰차가 곳곳에 진을 치는 통에 잠시 정차는커녕 휑한 도로에서 브레이크를 밟는 것조차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하는 수 없이 광장에서 떨어진 북쪽의 톈안먼으로 향했다. 담벼락 끝 모퉁이를 돌아 주변에 공안이 드문 한적한 곳에서야 간신히 차에서 내릴 수 있었다. 다시 오던 길을 거슬러 마오쩌둥(毛澤東)의 큼지막한 초상화가 걸려 있는 톈안먼 망루 쪽으로 걸어갔다. 제복을 입은 공안은 물론 운동화를 신은 평상복 차림의 젊은 청년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말로만 듣던 사복경찰(便衣)이었다. 걸음을 뗄 때마다 보도블록 양 옆을 내려다보는 폐쇄회로(CC)TV가 영 거슬렸다. 남루한 옷차림으로 길가에 앉아 있는 어느 아주머니가 수상했는지 족히 10명은 되어 보이는 경찰들이 둘러싼 채 이것저것 물어보며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했다.

좀 더 걸어갔더니 검색대가 놓였다. 여권을 꺼냈다. 슬쩍 몇 장 넘기더니 무사통과다. 지난해 중국에 잠시 왔을 때 붙였던 관광비자를 대충 본 탓이다. 운이 좋았다. 그렇게 망루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담장이 이상했다. 죄다 공사장 가림막에 가려져 있었다. 마오쩌둥 초상화를 호위하듯 내걸린 8개의 붉은 깃발엔 중국 오성홍기의 상징인 5개의 별이 빠졌다. 무표정하게 서 있는 공안에게 ‘무엇을 고치는 것이냐’고 묻자 그는 “10월 1일 국경절 행사를 앞두고 보수하는 것”이라고 심드렁하게 답했다. 담벼락 아래로는 안전모를 쓰고 돌아다니는 인부들이 여럿 보였다. 톈안먼 사태 30주년의 긴장감은 딱히 찾아볼 수 없었다.

3일 톈안먼 광장 주변 도로. 평소 관광버스로 붐비는 곳이지만 공안이 통제하는 통에 오가는 차량이 없어 한적하다. 건너편 광장에도 감시의 눈초리가 워낙 삼엄해 드문드문 관람객이 보일 뿐 평소 관광명소의 활기찬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3일 톈안먼 광장 주변 도로. 평소 관광버스로 붐비는 곳이지만 공안이 통제하는 통에 오가는 차량이 없어 한적하다. 건너편 광장에도 감시의 눈초리가 워낙 삼엄해 드문드문 관람객이 보일 뿐 평소 관광명소의 활기찬 분위기를 찾아보기 어렵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길 건너 톈안먼 광장을 바라봤다. 인민영웅기념비와 인민대회당의 웅장한 위용과 달리 드넓은 광장은 유독 한산했다. 지난해 여름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땡볕에도 관광객이 꼬리를 물던 곳이다. 사방에 깔린 공안들의 매서운 시선이 관람객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가는 통에 이 곳이 관광지가 맞나 싶을 정도의 살벌함마저 느껴졌다.

톈안먼 망루에서 광장으로 통하는 지하도로는 막혀 있었다. 인파에 뒤섞여 망루 밑을 지나 자금성 입구를 거쳐 2㎞ 가량을 빙 돌아서 다시 광장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다른 검색대를 지나야 했다. 그 사이 줄이 훨씬 길어졌다. 더 깐깐하게 신분을 확인하는 것 같아 왠지 찜찜했다. 이번에도 모른 체하고 여권을 보여줬다. 그런데 반응이 달랐다. 한참을 살피더니 취재비자가 붙어있는 것을 보고 “기자냐”고 묻더니 “혼자 왔느냐”, “왜 왔느냐” 등의 질문이 이어졌다. 쉬는 날이라 그냥 놀러 왔다고 둘러댔지만 “언론인은 톈안먼 광장과 자금성에 들어갈 수 없다”며 요지부동이었다.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유독 가족단위 관람객이 많았다. 월요일이라 자금성 관람이 쉬는 날이었지만 별 상관 없는 듯했다. 손녀와 나무그늘 밑에 앉아 있는 어느 할머니에게 ‘6ㆍ4 운동(톈안먼 사태의 중국 명칭)을 아시느냐’고 물었다. 그는 “허베이(河北)성에서 아들네로 놀러 왔다”며 “별 관심 없다”고 했다. 옆에 서 있던 아들은 “예전에 듣긴 했지만 지금은 상관 없는 일”이라며 “왜 그런 걸 물어보느냐”고 되물었다. 주변에 있던 공안들의 시선이 일제히 쏠렸다.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전(田ㆍ48) 씨는 “당시 18살 고등학생이었는데 어렴풋이 들었을 뿐 톈안먼 사태를 제대로 알게 된 건 7년이 지난 96년”이라며 “이미 과거의 일이라 깊은 감정은 없다”고 말했다.

3일 톈안먼 망루를 통해 들어온 자금성 입구. 자금성 관람이 쉬는 월요일인데도 한적한 광장과 달리 가족단위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3일 톈안먼 망루를 통해 들어온 자금성 입구. 자금성 관람이 쉬는 월요일인데도 한적한 광장과 달리 가족단위 관람객들로 붐비고 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20대 청년들의 생각이 궁금했다. 톈안먼 사태 이후에 태어난 세대다. 둘 중 하나는 “학교에서 배우지 않아 모른다”는 반응이었다. 한 대학 교수는 “학생들에게 뭘 얘기해주려 해도 번번이 규정에 걸리는데다 요즘 분위기가 예전 같지 않아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반면 톈안먼 사태를 알고 있는 경우에는 각자의 소신에 따라 입장이 갈렸다. 화(花ㆍ23)씨는 “유튜브로 당시 영상을 봤다”면서 “정부가 하는 일에 별 관심은 없지만 탱크로 사람을 짓밟는 건 해도 너무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있어 우리도 그렇고 다음 세대에도 이 사건을 알지 못하게 할 것”이라며 “점차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지지 않겠느냐”고 했다.

반면 위(魏ㆍ22)씨는 “무슨 민주화운동”이냐며 “학생들이 생각이 짧고 너무 어리석어 이용당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서구는 항상 중국을 비난하지만 그들의 민주주의는 우리와 맞지도 않고 우리는 그 체제를 택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장외집회나 집단행동이 나라를 어떻게 분열시켰는지 이라크와 시리아를 보면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각자의 견해야 어떻든 톈안먼 사태는 중국 현대사의 커다란 비극으로 남아 있다. 만감이 교차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왕(王ㆍ26)씨는 “예전에는 당시 학생들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너무 순진했고 또 바보처럼 과격하게 행동했다”면서 “너무나 복잡한 사건이라 누가 옳고 그르다고 똑 부러지게 얘기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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