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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를] 장동선 “사람들 마음에 ‘과학’이란 씨앗을 심습니다”

입력
2019.06.05 04:40
수정
2019.06.05 16:37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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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 한국일보]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장동선 박사가 5월 25일 오후 부산 북구 금곡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저작권 한국일보]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장동선 박사가 5월 25일 오후 부산 북구 금곡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부산 금곡도서관 무대를 주름잡던 장동선(39) 박사는 뇌과학자다. 독일 하이델베르크에서 태어나 막스플랑크싸이버네틱스연구소에서 인간 지각, 인지 및 행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보다 유망한 과학 커뮤니케이터이기도 하다. 2014년 세계적인 과학 커뮤니케이션 경연대회인 ‘사이언스 슬램’에서 우승하고 2015년 ‘세계 페임랩(FameLab) 대회’에서 최종 9위 안에 들었다. 두 대회는 각각 10분, 3분 안에 과학강연을 진행하고 관객들이 과학점수와 호응점수를 매겨 우승자를 정한다. 강연만 하건, 춤을 추건, 랩을 하건 뭘 하건, 방식은 자유다. 석ㆍ박사 전공자들뿐 아니라 고등학생도 참가할 수 있는 대회다. 최정상급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얘기다.

한국에선 tvN ‘알쓸신잡2’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정재승(KAIST 바이오 및 뇌공학과 교수), 이정모(서울시립과학관장) 이명현(천문학 박사) 등을 잇는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꼽힌다. 장 박사가 과학 커뮤니케이터 세계에 입문한 이유는 간단하다. “과학의 역할과 영향력에 대해 과학자는 일반 시민들에 공유하고 토론하고 논쟁할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어렸을 때 독일에서 태어나 다시 한국에 왔다가 다시 대학 때 독일에 들어간 특이한 이력이 화제가 됐다.

=”독일에서 유학중이던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고 7살 때 한국에 들어왔다. 그런데 다시 한국에 들어왔을 때 서양에서 자라 자유분방한 모습이 한국의 학교에 맞지 않았다. ‘홈스쿨링’ 으로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을 마친 뒤 검정고시를 봤고, 15세에 대학교 진학이 목표였다. 그런데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방황을 하게 됐고, 가출도 했다. 마음을 다 잡고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에는 하고 싶은 활동을 열정적으로 했다. 음악 서클을 만들기도 했고, 전국 고등학교 과학서클연합을 조직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때 만들어진 청소년위원회 초대 위원장이 되기도 했다. 독특한 경험들을 하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우리는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이 특별하구나, 특별한 뇌를 가졌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독일에서 박사를 마친 뒤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길을 걷게 됐다. 서구에선 사이언스슬램, 페임랩 같은 과학 커뮤니케이터 쇼가 활발한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일반 대중들의 욕구다. 유튜브나 인터넷을 통해 ‘나도 저런 강연을 들어보고 싶다’는 욕구가 늘었다. 나도 처음에는 주말 저녁에 커다란 콘서트 홀이나 커다란 클럽 같은 곳에서 500~600명이 모여 과학이야기를 듣는 풍경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그런 행사가 잘 진행된다. 그만큼 사람들의 수요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알쓸신잡’ 같은 지식 예능이 인기를 얻고 있지 않은가. 다른 하나는 과학자들의 필요성이다. 과학이 지나치게 세분화, 전문화 되다 보니 과학을 모르는 일반 대중을 물론, 과학자들조차 전문 저널을 읽어가기 어렵다. 그리고 한 해에 얼마나 많은 양의 연구가 쏟아지는가. 그러니 내 연구를 널리 알리고 다른 사람들이 내 연구를 인용하게 하려면 내 연구를 널리 알릴 필요성이 있다. 연구자가 자신의 강연을 SNS 등에 공유했을 경우 인용율이 많게는 8~10배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도 있을 정도다. 과학 커뮤니케이션은 과학자 스스로 연구역량을 끌어올리는 효과도 있는 셈이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일반 대중뿐 아니라 과학자들과도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저작권 한국일보]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장동선 박사가 5월 25일 오후 부산 북구 금곡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장동선 박사가 5월 25일 오후 부산 북구 금곡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과학 쇼의 구성은 직접 개발하나.

=“어떤 포맷으로 커뮤니케이션 할지는 각자가 개발한다. 어떤 과학 커뮤니케이터는 맥주 한 잔을 들고 올라가서 맥주의 원리를 벌컥벌컥 들이키면서 설명하기도 한다. 또 어떤 학자는 대학 힙합 크루를 데려와서 분자들 운동을 춤으로 표현하면서 화학적 원리를 설명하기도 한다. 저는 피아노를 사용해 표현하는 것을 즐긴다.” 

-과학 쇼의 대상은 어느 수준으로 상정하나.

=“과학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인데, 그 일반인들 중에서 뭔가 새로운 지식에 대한 욕구가 강한 사람을 상정한다. 사이언스 슬램을 가보면 다들 맥주 한 잔 들고 와서 즐기면서 본다.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다. 보통 고등학생 정도면 알 수 있을 수준으로 놓고 준비한다.” 

-한국은 이제 시작 단계인데.

=“아직까지 한국은 과학이 쇼처럼 콘텐츠화되어 자리잡지는 못한 것 같지만, 지난해 서울 강남 클럽에서 개최한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SNL) 등은 아주 훌륭했던 과학 쇼다. 이제 시작이지만 잠재력은 충분하다. 좋은 콘텐츠를 개발하는 많은 젊은 과학커뮤니케이터들도 있고, 사람들도 과학 강연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있다.”

[저작권 한국일보]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장동선 박사가 5월 25일 오후 부산 북구 금곡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뇌와 뇌를 연결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장동선 박사가 5월 25일 오후 부산 북구 금곡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뇌와 뇌를 연결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더 활발해지려면.

=“두 가지 문제가 있다. 우선 과학 쇼는 고등학생, 대학생부터 자유롭게 참여 해야 하는데, 고등학생은 수능에 대한 부담이 크고 대학생은 취업에 대한 부담이 크다. 내가 과학 전공자라 해도 전공에 대해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다기보다 부담을 안고 있다는 게 한국의 특징이다. 과학이 문화의 일부로 녹아 들어야 한다. 또 하나, 한국에도 훌륭한 과학 커뮤니케이터들이 많지만 인정을 못 받고 있는 것 같다. 1세대 과학 커뮤니케이터로는 정재승 교수, 이정모 관장, 최재천 교수, 이명현 박사 등이 있고, 요즘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유튜버들도 많다. 충분히 이 시장이 클 수 있고 더 많은 이들이 활동할 수 있지만, 한국에선 대학 교수가 아니면 권위가 떨어진다는 인식이 있어 어려운 점이 있다. 권위와 별개로 과학 커뮤니케이션 할 수 있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일반 대중들 입장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이유는 뭘까.

=“과학적 욕구가 있다면 ‘카더라’를 배격해야 한다. 유명한 누가 어디서 무슨 말을 했다는 이유로 그걸 진실이라 여겨서는 안 된다. 왜 그럴까, 어떤 연구를 기반으로 그 사람은 그런 얘기를 헀을까, 그 연구는 얼마만큼 신뢰할 수 있을까라고 되물어야 한다. 과학 커뮤케이션이란 비과학적 사고 방식을 깨고,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봉과 결별하는 일이다. 과학적 사고는 독재와 권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추종과 잘못된 선택을 막게 해주는 백신과 같은 것이다. 극단에 빠져들지 않게, 유사과학이나 비과학적인 사고에 빠져들지 않게,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옳고 그름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예방주사를 놔주는 것이다.”

-과학자에게도 과학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중요한가.

=”물론이다. 과학은 우리 삶을 정말 많이 변화시켰다. 전기와 자기장에 대한 궁금증이 초전도체와 반도체 연구로 이어졌고, 이를 통해 MRI 나 노트북 컴퓨터와 같은 기술들이 가능해졌다. 예전에는 조현병에 걸린 사람을 그저 “미쳤다”라고 생각하거나 배제했지만, 지금은 “그 사람은 미친 게 아니라 뇌 안에서 신경전달물질 밸런스가 무너졌구나”라고 알고 약을 처방할 수 있게 됐다. 이렇게 보면 일반인도 과학의 힘에 대해 알아야 할 권리가 있다. 과학은 일부 지식인들과 권력자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과학의 힘, 변화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게 중요하다. 과학자들조차 자신의 연구가 사회에 얼마만큼 큰 영향을 끼칠 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어? 이게 원자폭탄이 될지는 몰랐어’라고 말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과학이 대중과 가깝게 공유돼야 한다는 의미에서 과학 커뮤니케이션 하는 사람들은 굳건한 철학이 있어야 한다.”/그림 4[저작권 한국일보] 뇌과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인 장동선 박사가 5월 25일 오후 부산 북구 금곡도서관 다목적실에서 '뇌와 뇌를 연결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하고 있다. 부산=전혜원 기자 iamjhw@hankookilbo.com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성패는 어디서 갈리나.

“잘 섞어야 한다. 사이언스 슬램 때를 보면 완벽하게 쇼로만 가는 사람도 있고, 완벽하게 과학적 내용으로만 가는 사람도 있는데, 둘 다 1등을 못 한다. 사람들을 열광하게 하는 쇼와 그리고 사람들을 생각하게 하고 의문을 가지게 하는 지식이 조화롭게 섞여 있어야 좋은 과학쇼다.”

-과학 커뮤니케이터라는 자부심은 어디서 오나.

=”과학강연은 사람들 마음속에 씨앗을 심는 일이다. 중ㆍ고등학생이 내 강연을 듣고 ‘와, 나 나중에 과학 할래’라고 하면 그게 씨앗이다. 그 씨앗이 어느 순간 자라나 그 아이가 과학을 전공하게 된다면, 그게 아니라면 누군가가 이상한 얘기를 했을 때 과학적 사고로 그걸 반박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꽃을 피운 것이다. 2013년부터 과학 커뮤니케이션을 시작, 6~7년 가까이 하면서 가장 기뻤던 것도 그럴 때다. 제 강연 듣고 과학을 하겠다고 마음 먹었다는 사람이 실제 과학을 전공해 다시 만난 경우도 있다. 그 때 내가 심어준 생각의 씨앗이 이렇게 꽃폈구나 싶었다. 그 사람도 또 누군가에게 그런 씨앗을 심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부산=박진만 기자 bpbd@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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