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9일 예술의전당 ‘바그너 갈라’ 무대 올라
“제가 젊은 시절 봤던 캄머쟁어(Kammersängerㆍ궁정가수)들의 무대와 음악에서 본받을 점이 많았거든요. 이제 제가 그 입장이 되니까 모든 무대에서 최고의 컨디션으로 음악을 들려드려야겠다는 부담감과 공부를 더 많이 해야겠다는 의욕이 함께 생깁니다.”
지난해 독일어권 성악가 최고 영예인 캄머쟁어 호칭을 받은 베이스 연광철(54)의 말이다. 출연진 이름 옆에 캄머쟁어라는 호칭이 적힌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고 말하면서도, 그는 ‘책임감’을 언급했다. 2021년까지 일정이 잡혀 있는 바쁜 성악가지만, 연광철은 기회가 닿을 때마다 한국 무대에 오른다. 지난해에는 대구국제오페라페스티벌 무대에 섰고, 올해는 대한민국오페라페스티벌 마지막 작품인 국립오페라단의 ‘바그너 갈라’를 위해 한국을 찾았다. 최근 만난 연광철은 “한국에서 음악을 시작했고, 그 때의 경험이 밑거름 돼 지금의 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후배들과 음악을 좋아하는 분들을 위해 연주 제의가 오면 되도록 참여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시골 농가에서 태어나 공업고와 청주대 음악교육과를 나온 그는 입지전적 인물이다. 그는 1996년 지휘자 다니엘 바렌보임의 추천으로 바그너 성지로 불리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 입성한 뒤 세계 정상의 베이스로 자리매김했다. 세계적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와 한 무대에 서며 “어떻게 네트렙코의 아버지 역할을 동양인이 할 수 있냐”는 편견에도 부딪혔지만, 연광철은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로 이를 뛰어넘었다. 유럽과 미국에서 그는 ‘키는 작지만 거인처럼 노래하는 사람’이라 불린다.
8, 9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에서 예정된 ‘바그너 갈라’에서 그는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중 하나인 ‘발퀴레’와 바그너 최후의 작품으로 일컬어지는 ‘파르지팔’의 하이라이트를 선보인다. 거대한 무대 세트나 극적인 연출을 배제한 콘서트 형식의 공연으로 “음악에 대한 집중도가 높은 공연이 될 것”이라고 연광철은 말했다. ‘파르지팔’ 전문 테너로 유명한 크리스토퍼 벤트리스, 소프라노 에밀리 메기, 바리톤 양준모 등 화려한 출연진과 함께 호흡을 맞춘다. ‘어렵다’는 선입견이 큰 바그너 오페라에 대해 연광철은 “텍스트를 알면 훨씬 더 가깝게 접근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연광철이 매년 공연하는 작품의 30%는 새로 공부하는 곡이라고 한다. 2년 뒤에는 미국에서 러시아 오페라인 ‘보리스 고두노프’에 출연한다. 미국에서 올리는 러시아 오페라에 한국인이 출연하는 건 이례적이다. 연광철은 여전히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연마 중이다.
연광철은 한국의 오페라와 클래식 발전을 위해 ‘교육’을 강조했다. “제가 교생실습도 나가봤잖아요. 대학입시에 필요 없다는 이유로 예술적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차단돼요. 중고등학교 시절은 평생 살아가면서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중요한 시기거든요. 체계적인 교육이 이뤄져야 클래식이 더 발전하겠지요.”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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