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시대의 마이너리티] <31>가정 밖 청소년
2017년 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가출 청소년’을 ‘가정 밖 청소년’으로 바꿔 부르고 이들의 인권 개선에 노력해야 한다고 여성가족부에 권고했다. 가출한 청소년들은 가정의 보살핌이 부족해 학대 등 피해를 보고 있지만, 비행청소년이나 예비범죄자로 간주돼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국회에도 이런 문제의식을 반영, 이들의 호칭을 바꾸는 내용의 청소년복지지원법 개정안(권미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돼 있지만, 법안은 국회의 무관심 속에 별 논의 없이 2년 가깝게 잠자고 있다.
전문가들은 위기에 처한 고위험 청소년을 실질적으로 돕는 정책 수립을 위해선 용어 수정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가출’을 청소년에게 허용될 수 없는 문제행동으로 보면 최종 목표는 원가정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라며 “하지만 관점을 바꿔 보면 이들은 가정이 해체돼 돌아갈 곳이 없는 청소년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건강한 성인으로 자립할 수 있게 사회ㆍ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도록 정책을 전환하기 위해서는 용어 수정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가정 밖 청소년을 보호 대상으로 볼 경우, 당국의 체계적인 자립 지원이 빈약하다는 점이 드러난다. 현재 청소년 쉼터에서 퇴소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다. 이병모 의정부시 남자단기청소년쉼터 소장은 “지자체나 민간기관이 반찬 배달 등의 사업을 하지만 이는 일부일 뿐 공식적 정부 지원은 없다”며 “아이들 대부분은 빈손으로 사회에 나가기 때문에 현장에선 ‘발가벗겨져 나간다’고 표현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정 밖 청소년도 보호종료아동(아동양육시설 퇴소 아동)처럼 국가가 적극적 보호 대상으로 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희진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보호종료청소년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는 전담조직을 두고 자립수당 같은 현금지원을 하고 있는데, 여가부가 담당하는 가정 밖 청소년에게는 취업훈련이나 학업지원 등 현물지원에 그친다”며 “가정 밖 청소년에게도 자립지원을 전담, 총괄 지원할 기관을 두고 예산을 늘려줘야 한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가정 밖 청소년의 자립을 돕고 있다. 영국은 노숙 청소년을 위한 주거 지원에 초점을 맞추고, 연고가 없거나 가정폭력 피해를 본 청소년 등은 56일 이상 거주지가 불안정하면 지방정부가 거주취약자로 분류한 후 거주지를 제공한다. 미국도 연방정부가 가정 복귀가 불가능하고 자립이 어려운 16~22세 청소년을 대상으로 전환생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최대 540일까지 안전한 숙소를 제공하고 정서적으로 지원해 자립을 돕는 식이다. 프랑스는 16~25세의 가정 밖 및 위기 청소년들이 일종의 자립계획서를 제출하면, 직업교육이나 실업교육 등을 받을 수 있도록 최장 6개월까지 월 최대 450유로(약 59만원)의 자립수당을 지급한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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