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카 문명의 심장이던 페루는 16~19세기 300년 스페인 피식민기를 거쳐 1824년 독립했지만 칠레 등과의 전쟁, 정치 내분과 부패, 군사 쿠데타 등으로 20세기 내내 시련을 겪었고, 2000년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권위주의 정권이 패퇴한 이후 가까스로 안정ㆍ성장의 토대를 마련했다. 하지만 2009년 6월 페루 현대 역사상 최대의 정치 유혈 폭력사태로 꼽히는 페루 아마존 원주민 봉기를 겪었다. 앞서 2월 당시 여당인 아메리카인민혁명동맹당(APRA)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 후속 조치로 국영 석유회사 등 기업들의 원유 채굴권을 비롯한 밀림 개발권을 무분별하게 인정했다.
안데스산맥을 사이에 두고 에콰도르 콜롬비아 등과 국경을 맞댄 페루 서쪽 아마존 밀림지대인 페루비안 아마존(Peruvian Amazon) 지역은 페루 원주민들의 오래된 생존 공간이자, 국영 석유회사 등 거대 기업들이 야금야금 잠식해 온 자원의 보고다. 북미자유무역협정을 전후해 가르시아 정부와 의회는 다수의 기업 규제를 철폐했다. 원주민 권리 보호 연대기구인 ‘페루 우림 개발 대응 부족 위원회(AIDESEP)’가 앞장서 정부와 협상을 벌였으나 진척이 없자 원주민들은 2009년 4월 주요 경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시위ㆍ농성을 시작했다.
2008년 여당 고위인사들의 오일 부패 스캔들도 그즈음 들통이 났다. 그들이 외국계 석유개발 회사의 시추권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리베이트를 협상하는 내용의 녹음 테이프가 공개된 거였다. 일부는 구속됐지만, 연루 의혹이 있던 일부는 조사조차 받지 않았다.
6월 5일 리마 북쪽 1,000km 지점의 베구아(Bagua) 정글 하이웨이의 이른바 ‘데블스 커브(Devel’s Curve)’ 인근에서 도로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농성하던 원주민 5,000여명과 무장 경찰이 충돌, 32명(주민 23명)이 숨지는 참변이 빚어졌다. 공권력은 군대와 헬기까지 동원해 하루 만에 “외부세력이 개입한 폭력 소요사태”를 진압했다.
2011년 6월 페루 대통령 선거에서는, 1975년 민간정부 출범 이래 36년 만에 처음 좌파 성향의 야당 페루민족주의당(PNP)이 집권했다. 가르시아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뇌물을 받은 혐의로 조사를 받다 경찰 강제 연행 직전인 지난 4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최윤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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