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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축제 아닌 모두의 인권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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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만의 축제 아닌 모두의 인권 위하여…

입력
2019.06.02 17:15
수정
2019.06.02 22:46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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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 된 퀴어문화축제 성황, 첫해 50여명서 올 7만여명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된 지난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까지 행진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준기 기자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진행된 지난 1일 오후 서울 광화문 앞까지 행진한 참가자들이 서울광장으로 돌아오고 있다. 정준기 기자

“평소에는 사회생활을 위해 숨기다가도 오늘 하루 만은 ‘당신과 같은 사람’이란 것을 행동으로 보여줄 수 있죠.”

지난 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2019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가한 직장인 강모(25)씨는 축제의 의미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성(性)소수자인 강씨 같은 이들만이 아니다. 어린 자녀의 손을 잡고 온 부모부터 노인과 외국인, 장애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축제를 찾았다. “아이들을 위해” “사랑과 인권을 위해” 등 참가 이유는 달랐어도 함께 호흡하며 성소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서울퀴어퍼레이드 연대표. 정준기 기자
지난 1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설치된 서울퀴어퍼레이드 연대표. 정준기 기자

이날 서울광장과 광화문 일대에서 ‘축제의 꽃’인 서울퀴어퍼레이드까지 성황리에 마친 퀴어축제는 어느덧 20주년, 성년이 됐다. 그 사이 ‘그들만의 행사’에서 ‘모두의 축제’로 성장했다. 첫해인 2000년 달랑 50여 명이 비 내리는 서울 대학로를 행진했던 퀴어퍼레이드는 올해 7만여 명(주최 측 추산)이 참여한 거대한 행렬이 됐다.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린 지난 1일 오후 서울광장에 성별, 성정체성, 성적지향 구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정준기 기자
서울퀴어퍼레이드가 열린 지난 1일 오후 서울광장에 성별, 성정체성, 성적지향 구분 없이 이용할 수 있는 '성중립 화장실'이 설치돼 있다. 정준기 기자

오전 11시 사전행사로 퍼레이드 시작을 알린 서울광장에는 인권 및 종교단체, 중ㆍ고교 및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각국 대사관, 기업과 정당 등 다양한 단체들이 74개의 부스를 꾸렸다.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단위 참가자를 비롯해 나이 국적 종교 성별 성정체성 성적지향을 불문하고 다양한 이들이 쾌적한 날씨 속에 나들이를 온 듯 축제를 즐겼다.

지난 1일 서울광장 부스에 설치된 '퀴어퍼레이드 지도’에 한 참가자가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정준기 기자
지난 1일 서울광장 부스에 설치된 '퀴어퍼레이드 지도’에 한 참가자가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정준기 기자

‘스무번째 도약, 평등을 향한 도전’이란 슬로건에 걸맞게 축제는 평등에 대한 공감대를 확인하는 장이었다. 퍼레이드 전날인 지난달 31일 밤 국내 최초로 진행된 ‘서울핑크닷’ 행사에서도 성소수자를 비롯한 모든 사회 구성원의 자유와 평등을 지지하는 분홍색 불빛이 서울광장을 가득 메웠다. 퍼레이드에 참석한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은 “모든 인권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아직까지도 가장 취약한 성소수자 인권을 위해 연대한다”고 말했다.

서울퀴어퍼레이드 전날인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핑크닷' 행사 사진. 싱가포르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처음 시작돼 세계 곳곳으로 퍼진 핑크닷 행사는 국내에서 최초로 열렸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서울퀴어퍼레이드 전날인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광장에서 열린 '서울핑크닷' 행사 사진. 싱가포르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처음 시작돼 세계 곳곳으로 퍼진 핑크닷 행사는 국내에서 최초로 열렸다.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회 제공

여자친구와 함께 참가한 ‘앨라이’(지지자) 도상훈(34)씨도 “축제에 올 때마다 성소수자를 비롯한 다양한 소수자들이 자기 존재를 알리는 모습을 본다”며 “나도 같은 시민으로서 힘을 보태고 싶다”고 말했다.

이형숙(왼쪽)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과 협의회 활동가들이 지난 1일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다. 정준기 기자
이형숙(왼쪽)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과 협의회 활동가들이 지난 1일 서울퀴어퍼레이드에 참석해 행진하고 있다. 정준기 기자

부스 앞에서 ‘프리허그’ 행사로 참가자들을 따뜻하게 안아준 성소수자부모모임의 활동가 지인(활동명)은 “직접 와보면 일부에서 호도하는 것처럼 거리감 있는 ‘문란한 행사’가 아니란 걸 알 수 있다”며 “성소수자 아이를 둔 부모들도 축제를 통해 지지하는 이성애자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고, ‘우리 아이가 대체 뭘 잘못했길래’란 생각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지인(활동명)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를 비롯한 모임 회원들이 1일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 부스 안에서 활짝 웃고 있다. 정준기 기자
지인(활동명) 성소수자부모모임 활동가를 비롯한 모임 회원들이 1일 서울퀴어퍼레이드 행사 부스 안에서 활짝 웃고 있다. 정준기 기자

최초로 광화문광장을 지난 퀴어퍼레이드는 올해 축제의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서울광장부터 광화문까지 서울 도심이 끝이 보이지 않는 무지개 행렬로 가득 찼다. 참가자들은 건물이나 도로 위에서 행렬을 발견한 시민들과 서로 환호와 손인사를 주고받으며 연대의 뜻을 나누기도 했다. 축제에 반대하는 일부 개신교ㆍ보수단체 회원들이 “동성애는 죄악이다” 등의 구호를 외치자 퍼레이드 참가자들은 “동성애는 사랑이다” “양성애 아세요?” 같은 익살로 응수했다.

퀴어축제는 오는 9일까지 진행되는 한국퀴어영화제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한채윤 서울퀴어문화축제 기획단장은 “성소수자 대 기독교 단체의 갈등 프레임을 넘어 ‘서로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이 함께 모인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발견해 나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강명진 서울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장은 “퀴어축제는 어느덧 다양한 시민의 지지를 받는 대형 행사가 됐지만 정치권 등에선 혐오에 편승한 발언 외에는 제대로 의제화조차 안 되고 있다”며 “소수자들이 인정받으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본격적으로 나아갈 때”라고 말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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