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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여성 ‘혼족’들의 공포

입력
2019.06.02 18:00
수정
2019.06.02 21:3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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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한 여성을 보고 호감을 느껴 엘리베이터 앞에서 보험상품을 설명하겠다며 접근한 뒤 따라가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것을 보고 번호를 외웠다. 이틀 뒤 빈집에 비밀번호를 누르고 침입한 A는 피해여성이 귀가하자 흉기로 위협해 성폭행하고 살해했다. 이런 범죄도 있었다. B는 여성이 거주하는 원룸 문 앞 천정에 몰래카메라를 설치해 비밀번호를 알아낸 뒤 몰래 들어가 피해자를 성폭행한 뒤 달아났다. 범인은 우편함 내 우편물 수령인 이름을 통해 여성 혼자 거주하는 곳을 범행 대상으로 정했다.

□ ’신림동 강간미수 영상’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혼자 사는 여성들의 공포가 커지고 있다. CCTV 영상을 보면 범인은 피해 여성이 간발의 차이로 집에 들어간 뒤에도 10여분을 머물며 휴대폰 손전등으로 도어록을 비춰보고 있었다. 자주 누르는 번호에 남은 흔적을 찾기 위해서였을 게다. 전문가들은 전자식ᆞ재래식 도어록의 병행 설치를 권장한다. 집주인 허락을 받기 어려우면 항상 손으로 가리고 비밀번호를 누르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수시로 도어록을 닦아 지문이 남지 않게 하고 비밀번호를 길게 설정하는 것도 권장할만한 방법이다.

□ 범죄 프로파일러들에 따르면 성폭력 범죄자들의 범행 대상 선정은 ‘야한 옷차림’이나 ‘성적 매력’이 아니라 ‘혼자 있는 상황’이나 ‘침입의 용이성’이다. 강지현 울산대 경찰학과 교수는 논문에서 여성 1인 가구는 남성보다 주거침입 피해를 당할 가능성이 약 11배, 범죄 희생자가 될 가능성이 2.3배 높다고 밝혔다. 우락부락한 남성 이름으로 택배 주문하기, 음식 주문시 경비실서 받아가기, 우편물 수령 후 개인 신상내용 떼서 버리기 등 범죄예방 팁이 인터넷에 넘치고, 남자 목소리를 내주는 앱과 목소리 변조 초인종도 나왔다.

□ 현재 여성 1인 가구는 280만명을 넘었고, 2025년에는 320만명으로 늘어날 것이라는 추산이다. 여성 혼족들이 지불하는 ‘안전비용’은 적지 않다. 싼 반지하 대신 비싼 여성전용 원룸을 찾는 등 불안과 공포로 시간과 돈, 에너지를 소모한다. 일종의 ‘핑크 택스’(Pink Tax)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은 “1999년 발의돼 20년째 폐기와 계류를 반복하는 ‘스토킹 범죄 처벌법’부터 하루빨리 처리하라”고 정치권의 각성을 촉구했다. “왜 공포는 늘 여성의 몫인가”라는 질문에 국가는 답해야 한다.

이충재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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